진정한 의미의 양심은, 외부의 권위가 내면화된 권위적 양심과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프로이트가 말한 ‘초자아’가 이러한 권위적 양심에 해당하는데,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단계에서는 대체로 양심을 이런 형태로 경험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권위적 양심은 모두 부모나 학교, 국가, 사회, 교회 등을 통해서 만들어진 제도적 규범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면서 만들어진다. 이러한 권위적 혹은 초자아적인 양심은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에게 집요하게 캐묻고 야단치고 벌주는 외적 권위가 아이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자의식과 자율성을 키우지 못하면, 나중에는 배우자, 상관, 기업, 종교 단체, 국가 기관 등 다른 권위에 의존하는 인간으로 전락한다. 외부적인 요소에 대한 극단적인 의존성 때문에 과감하게 자율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어,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인물 혹은 조직의 입장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경직된 초자아로서의 양심은 일종의 기능적 양심으로서, 한 개인으로 하여금 책임 있는 검토나 비판 없이 조직의 이익에 맹목적으로 봉사하게 만든다. 이것은 보편적인 가치에 대한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책임감을 침묵하게 만드는 일종의 어용 양심 또는 이데올로기화된 양심의 형태를 취한다.


이런 형태의 양심을 지닌 사람들은 집단적 초자아이자 절대적 권위인 조직의 규범과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에 자신이 외부의 대상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자기 것이 아닌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보편적인 정신적 가치를 염두에 두지 않을 때에는, 심지어 죄악도 양심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서 ㉠그들은 양심에 따라, 조직의 이익을 위하여 남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법의 지시에 따르듯이’ 악행을 행하는 것이다.


진정한 양심은 자신의 행위나 태도에 관련된 도덕적 가치에 대한 깨달음과 인류가 소중하게 여기는 보편적 가치에 대한 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또한 진정한 양심, 곧 자율적 양심은 외부의 목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때 형성된다.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 받아들인 보편적인 가치가 내면화될 때 진정한 도덕적 책임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된다. 문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참된 양심을 지닌 사람은 주체적으로 상황을 검토하고, 그 상황에 대한 도덕적.윤리적 성격을 자율적으로 판단하여 적절하게 행동한다.


요컨대 올바르고 건설적으로 길러진 양심은 한 인격체를 초자아적 양심의 단계를 넘어서게 해 준다. 이렇게 길러진 자율적인 양심은 주체적으로 받아들인 실천적 가치들을 책임감 있게, 철저하게 따르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한다. 자율적인 양심은 내 안에 있는 참된 자아의 음성이며, 삶의 과정에서 쌓은 도덕적 경험의 표현이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주변 세계에 대한 관심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했듯이 양심은 ‘자아의 영토를 지키는 파수꾼’인 셈이다.


― 베른하르트 A. 그림, ‘도덕적 가치에 대한 지진계-양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