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思想)은 개인의 소산이라기보다는 사회 공동체의 소산이다. 개인의 생각은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그것의 원형(原形)이 되는 사상들은 사회적 산물이다. 개인은 그 원형들 중에서 하나 혹은 몇 개의 사상들을 주관에 따라 선택하여 자신만의 사상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로 외부에 존재하던 사상들이 개인의 마음 속에 들어 왔을 때 반드시 통일되거나 조화를 이루는 것만은 아니다. 서로 모순(矛盾)되는 생각들이 마음 속에서 서로 엉크러져 판단에 혼돈을 일으키게 되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이 수용한 사상들은 처음에는 대개 여러 갈래로 갈려서 마음 속에서 웅성거린다. 이러한 생각의 ㉠웅성거림은 일단 그의 사상이 풍부함을 의미한다.


행동적인 인간은 이 중 어느 하나의 사상이 우위(優位)를 차지하여 다른 생각이 대두하는 것을 억누르면서 행동의 방향을 다잡아 간다. 따라서, 위대한 행동가는 대개 심오한 사상가가 되기 어렵다. 반면에 사색적인 인간은 상반(相反)되는 사상들이 마음 속에서 서로 정당성을 주장하기 때문에 끝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만다. 이러한 사색가들은 대체로 회의주의(懷疑主義)쪽으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행동의 지침이 될 수 있는 근거를 여러 곳에서 찾으려 하기 때문에 도리어 행동의 신속성 또는 행동 자체가 지장을 받게 된다. 따라서, 사색가는 대개 행동가가 되기 어렵다. 이들에게는 결단성 있는 행동을 취하지 못하는 결함이 있는 반면에, 그릇된 판단을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상의 가치는 하나의 사리(事理)를 여러 면에서 고찰함으로써 그것을 더 넓고 깊게 이해하도록 해 주는 데 있다. 더 깊이 숙려(熟廬)된 사상을 근거로 한 행동일수록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궁극의 선(善)으로 인도할 수 있는 절대적인 사상은 생각할 수 없다. 사상이란 결국 시대에 따라서 상대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시대적 상황이나 자신의 입장을 기준으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며, 또 그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사상이 되기를 기대한다. 반면에 다른 사람이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져 주기를 바라면서도, 그의 생각이 자기의 것보다 나아 보일 때에는 슬그머니 그의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삼기도 한다. 이러한 추종성(追從性)은 인간의 주체성과 배치(背馳)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상호간의 이해를 통하여 보편적인 사상이 성립하도록 해 주는 바탕이기도 하다. ⓑ주관의 독창성과 객관적 수용 가능성이 조화를 이룰 때 사상의 가치는 빛을 발한다.


(1996년 | 1997학년도 대수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