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을 위하여 목(牧)*이 존재하는가, 백성이 목을 위해 태어났는가? 백성들은 곡식과 피륙을 내어 목을 섬기고, 수레와 말을 내어 따르면서 목을 영송(迎送)하며, 고혈(膏血)을 다하여 목을 살찌게 하니 백성들이 목을 위해서 태어난 것인가?


태고 시절에는 백성만이 있었을 뿐이니 어찌 목이 존재했겠는가? 백성들은 한가로이 마을을 이루어 모여 살았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을 때 이를 판결할 수 없었다. 이 때 한 노인이 있어 공평한 말을 잘 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그 노인에게 가서 판정을 받았고, 모든 이웃 사람들도 판정에 복종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노인을 추대하여 이정(里正)이라고 불렀다. 또한 여러 마을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판결하지 못하고 있을 때 어느 한 노인이 있어 현명하고 지식이 많았기 때문에 모두 그에게 가서 판정을 받고 복종하였다. 그리하여 함께 그를 추대하여 당정(黨正)이라고 불렀다. 역시 몇 개의 당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한 노인이 어질고 덕이 있었기 때문에 모두 그에게 가서 판정을 받고 복종하였다. 그리하여 그를 추대하여 주장이라고 불렀다. 이와 마찬가지로 몇 개 주의 주장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우두머리로 삼아 국군(國君)이라 하고, 여러 국군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우두머리로 삼아 방백(方伯)이하 하며, 사방의 방백들이 한 사람을 추대하여 가장 높은 우두머리로 삼아 황왕(皇王)이라 불렀다. 그러므로 황왕의 근본은 이정에서 나온 것이다. 한편 이정은 백성들의 희망을 좇아 법을 제정하여 당정에게 올리고, 당정은 백성들의 여망을 좇아 법을 제정하여 주장에게 올렸다. 역시 주장은 이를 국군에게 올렸으며, 국군은 다시 황왕에게 올렸다. 그러므로 그 법은 모두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후세에는 어느 한 사람이 스스로 황제가 되어 자기의 자제와 종복들을 제후로 삼고, 제후는 자기 심복을 뽑아 주장을 삼으며, 주장 역시 자기 심복을 가려 당정․이정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황제는 자기 욕망을 좇아 법을 제정하여 제후에게 내리고, 제후는 다시 자신의 욕망대로 법을 제정하여 주장에게 내린다. 이와 같이 주장은 당정에게, 당정은 다시 이정에게 내리니, 그 법은 통치자를 존숭(尊崇)하고 백성을 비하하며, 아랫사람에게는 각박하고 윗사람에게는 너그럽게 되었다. 이렇듯 백성은 한결같이 목을 위하여 태어난 것처럼 되어 버렸다.


오늘날 수령들은 옛날의 제후와 같아져 궁실과 수레, 의복과 음식, 그리고 좌우의 시종을 거느린 것이 마치 국군의 그것에 비길 만하다. 또 그들은 넉넉히 다른 사람을 경복(慶福)할 만하고, 그들의 형률(刑律)과 위엄은 충분히 사람들을 두렵게 할 만하다. 결국 수령들은 오만스럽게 자신을 뽐내고, 태평스럽게 스스로 안일에 빠져서 자신이 목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만다. 사람들이 분쟁을 일으켜 찾아가 판결을 구하면 번거로워 하면서 “왜 이렇게 시끄러우냐?” 하고, 굶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제 스스로 죽은 것일 뿐이다.“라고 한다. 곡식과 피륙을 바쳐서 섬기지 않으면 곤장을 치고 몽둥이질을 하여 피가 흘러서야 그친다. 날마다 거둬들인 돈꾸러미를 헤아려 낱낱이 기록하고, 돈과 피륙을 부고하여 전답과 주택을 장만하여, 권세 있는 재상가에 뇌물을 보내 뒷날의 이익을 기다린다. 이러고서야 백성이 목을 위하여 태어난 것이어니와, 어찌 이것이 타당한 이치이겠는가?


*목:백성을 맡아 다스리는 자의 총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