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칸트


인간은 지식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전문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지식을 알기 위한 과정의 연속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지식에 대해 체계적으로 고찰하는 철학의 한 분야가 인식론(認識論)이다. 인식의 문제는 고대에도 소피스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에 의하여 논의되었으나 철학의 중심 문제로 등장한 것은 비교적 근대의 일이다. 그 이유는 근대에 이르러 철학적 지식도 자연 과학적 ⓐ지식과 같은 확실성을 요구하게 되면서 지식의 문제가 자연히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근대 인식론은 크게 경험주의와 합리주의의 두 유형으로 나타났다.


17세기 영국을 중심으로 발전한 경험주의는 감각적 경험을 통해 얻은 것만을 지식이라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지식은 인간의 경험으로 도출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감각적 경험으로 알 수 없는 선험적(先驗的)인 것은 지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경험주의는 지식을 얻는 방법론으로 주로 귀납적 방법을 이용하였다. 즉 개별 현상들을 관찰하고 검증함으로써 공통된 특징을 찾아내거나 동일한 관계를 찾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현상들에 공통되는 법칙을 구성하거나 동일한 개념을 발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유럽의 백조가 희다고 전 세계의 백조가 희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방법론 자체에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한편 유럽 대륙을 중심으로 발전한 합리주의는 감각에 의해 얻어지는 개별적 사실들은 항상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지식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들은 지식이란 영원히 불변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보편적인 것을 추구하였고, 이는 이성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합리주의는 이성에 의한 지식만을 가장 이상적인 지식으로 여긴다. 여기서 이성이란 후천적인 감각 능력에 대립되는 선천적인 인식 능력을 말한다. 합리주의는 지식을 얻는 방법론으로 주로 연역적인 방법을 이용하였다. 즉 합리주의는 보편으로부터 개별을 이끌어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합리주의는 감각 경험과 물리적 현상을 도외시했기 때문에 구체적 현실에 대한 지식을 무시한다는 점과 새로운 사실의 발견에 대해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러한 경험주의와 합리주의의 대립에 대해, 칸트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인식 체계를 제시한다. 칸트는 인간의 인식 능력 중에는 감성과 오성이 있다고 보았다. 감성이란 외부 세계로부터 들어오는 자극(감각 자료)을 감각적인 직관으로 만드는 능력을 말하고, 오성이란 감각적인 직관에 대해 사유하여 개념화하는 능력을 말한다. 칸트는 인간의 지식은 내용과 형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 두 가지가 반드시 합쳐져야 지식이 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내용은 감각 경험을 말하고, 형식은 오성을 말한다. 다시 말해 칸트는 외부에서 잡다하게 자극이 주어지면 감성이 이것을 감성의 형식으로 질서를 만들고, 오성은 이것을 오성의 형식인 범주를 통해 구성하여 지식을 완성한다고 보았다. 이렇게 해서 칸트는 감각적 경험에만 의존하는 경험주의의 문제점과 감각 경험을 도외시하는 합리주의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종합했던 것이다.


― 강영계, ‘철학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