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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리학자들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지(知)와 행(行)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특히 도덕적 실천과 결부하여 지와 행의 문제를 다루었는데, 그 기본적인 입장은 ‘지행병진(知行竝進)’이었다. 그들은 지와 행이 서로 선후(先後)가 되어 돕고 의지하면서 번갈아 앞으로 나아가는 ‘상자 호진(相資互進)’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만물의 이치가 마음에 본래 갖추어져 있다고 여기고 도덕적 수양을 통해 그 이치를 찾고자 하였다.

 

18세기에 들어 일부 실학자들은 지행론에 대해 새롭게 접근하였다. 홍대용은 지와 행의 병진을 전제하면서도, 도덕적 수양 외에 사회적 실천의 측면에서 행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용 후생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민생을 풍요롭게 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그에게 지는 도덕 법칙만이 아닌 실용적인 지식을 포함하는 것이었으며, 행이 지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었다.

 

19세기 학자 최한기는 본격적으로 지행론을 변화시켰다. 그는 행을 생리 반응, 감각 활동, 윤리 행동을 포함하는 일체의 경험으로 이해하고, 지를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객관적인 지식으로 규정하였다. 그는 선천적인 지식이 따로 없고 모든 지식이 경험을 통해 산출된다고 보아 ‘선행후지(先行後知)’를 제시하고, 행이 지보다 우선적인 것임을 강조하였다.

 

최한기에게 지와 행의 대상은 인간.사회.자연을 포괄하는 것이다. 그는 행을 통한 지의 형성, 그 지에 의한 새로운 행, 그리고 그 행에 의한 기존 지의 검증이라는 이전과는 차별화된 지식론을 제시하였다. 그가 경험으로서의 행을 중시한 것은 자연 세계에는 일정한 원리인 물리(物理)가 있지만 인간 세계의 원리인 사리(事理)는 일정하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연을 탐구하여 물리를 인식함으로써 사리가 성립되 고, 이 사리에서 인간의 도덕인 인도(人道)가 나온다고 보았다.

 

이러한 서로 다른 지행론은 그들의 학문 목표와 관련이 있다. 도덕적 수양을 무엇보다 중시했던 성리학자들과 달리, 실학자들은 피폐한 사회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학문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최한기가 행을 앞세운 것은 변화하 는 세계의 본질을 경험적으로 파악하여 격변하는 시대에 대처하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