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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근대 철학을 특징지은 두 가지 중요한 변수로는 무엇보다도 자연과학의 발달과 자아의 발견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학이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과학적 지식의 세계, 즉 현상세계에 국한된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변수에 주목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자아의 발견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로부터 시작된 ‘주관성의 철학’은 이제 생각하는 주체(자아)와 생각되는 대상(세계)의 분리를 가져왔고, 이로써 근대 철학은 ‘주관이 어떻게 있는 그대로의 대상을 알 수 있는가?’라는 과제를 가지고 씨름하는 인식론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철학은 그 출발에서부터 불가피하게 회의론과 불가지론(不可知論)을 내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인식론은 주-객이 아직 분리되지 않았던 ‘낙원(모두 하나가 되어 있는 상태)’에서 추방된 인간의 운명을 예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나’라는 존재가 주변 사물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따로 떨어져 인식될 수 없었던 삶의 구도로부터 이제 독자적인 자의식을 지닌 ‘내’가 내 밖의 대상세계를 나의 눈으로 바라보는 구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자의식이 분명해질수록 어떤 면에서 우리는 다른 존재를 이해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근대적 세계관이 낳은 불가피한 결과이기도 하다. 근대 경험론의 완성자인 흄에게서 우리는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객체(대상)를 결코 알 수 없다.’는 회의주의적 결론을 보게 된다. 이는 곧 인간이 지닌 이성의 능력에 대한 불신, 인간 이성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함축하는 것이다.


‘도덕감’ 개념의 등장은 위와 같은 근대 인식론의 전개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근대 이전, 특히 플라톤주의적 세계관에서 도덕적 선은 우주 그 자체로부터, 즉 자기 스스로를 드러내는 실재의 관점에서 이해되었다. 그러나 기계론적 우주관과, 계몽을 통해 스스로의 독자성을 깨닫게 된 해방된 주관 개념은 주체와 객체 사이를 확연히 구분 짓게 하였다. 


여기서 무엇이 주관으로 하여금 한 객체(대상)로서의 선을 인식하고 또 지향하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도덕감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다른 감각 기관들이 물리적 대상들을 인식하듯이 도덕적 대상들을 인식한다고 가정한 것이다. 모든 인간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에 관한 선천적인 관념’ 혹은 ‘사회적 관련성을 고려하는 어떤 자연적인 가치 의식’을 가지고 있다. 도덕 문제에서도 도덕적 가치를 판별하는 도덕감 혹은 자연적 감정이 존재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리키는데, 이 능력은 우리가 도덕적 대상들(인간의 행위와 감정들)을 지각할 때 필연적으로 작용한다. 이 세상에 정상적인 사람으로서 이러한 도덕감 혹은 자연적 감정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있을 수 없다.


― 박찬구, 「개념과 주제로 본 우리들의 윤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