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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 중에는 쓰기와 읽기에 대하여 상당히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책을 멸시하고 책을 통해 얻은 지혜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가짜라고 생각하였다. 책에 대한 이러한 태도의 근원에는 플라톤이 있다. 플라톤은 글쓰기에 대한 혐오감을 누구보다 분명하게 표현한 철학자였다. 그런데 ‘플라톤은 글을 쓰다가 죽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많은 글을 썼고, 어떤 철학자보다도 치밀하게 다듬어진 저작들을 남겼다. 그럼에도 플라톤이 글쓰기 또는 ‘쓰인 글’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플라톤은 문자가 언제나 그렇게 좋은 것만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는 살아 있는 가르침을 받고 그것을 암송하여 자기 것으로 내면화했을 때 참된 지혜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문자로 기록된 것은 필요할 때 다시 들추어 볼 수 있기 때문에 굳이 애써서 암기할 필요가 없다. 그는 문자 때문에 기억은 점점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망각과 상실이 늘어날 것을 염려한 것이다. 플라톤은 ㉠문자로 쓰인 텍스트는 ‘생생하고 혼이 깃든 말(진리)’의 복사에 지나지 않으며, 내면적 정신의 외화(外化)에 불과한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문자로 된 기록에는 정신의 특성인 내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플라톤에게 있어 앎이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앎의 주체와 앎의 대상이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일, 즉 ‘자기 현존’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문자와 문자로 쓰인 텍스트에 의존하는 것은 기억을 통한 능동적인 자기 현존을 저해하고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완벽한 자기 현존이 아무런 매개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물음과 관련하여 “심각한 사람은 심각한(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쓰지 않는다.”라는 플라톤의 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심각한 문제에 관해 쓴 글은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심각하고 중요한 일에 관한 것일수록 글로 남길 생각을 말 것이며, 만일 그와 같은 글을 보더라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충고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런데 플라톤은 이러한 말을 글로 써서 남겼다. 사실 플라톤 자신이 자신의 말을 뒤집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참과 거짓, 선, 정의, 죽음 등 매우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 그것도 많은 분량의 글을 써서 남겼기 때문이다. 그는 매우 심각한 사람이었고 그가 다룬 주제 역시 심각하고 중요한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플라톤은 여기서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는가? 일견 모순으로 보이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철학과 텍스트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 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철학은 언제나 텍스트를 초월해서 현실과 진리의 문제에 맞닥뜨리고자 한다. 텍스트는 현실의 총체적인 모습을 담아내지 못하며, 살아 있는 진리를 보여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초월도 문자와 텍스트를 거쳐서 수행될 수밖에 없다. 철학과 사유는 문자와 텍스트를 통해 지탱되고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 강영안, ‘텍스트와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