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복(安鼎福, 1712 ~ 1791)

 

 

책을 읽을 때는 모름지기 의심이 있어야 하니, 의심이 있어야 학문이 진보할 수 있는 법입니다. 주자(朱子)는 ‘책을 읽으면서 크게 의심하면 크게 진보한다.’라고 하셨고, 또 ‘처음 읽을 때는 의심이 없다가 그 다음에는 점차 의심이 생기고 중도에는 구절구절 의심이 생긴다. 이런 과정을 한 차례 거친 뒤에는 의심이 점차 풀려서 두루 꿰어 통하게 되니, 이러해야 비로소 학문이라 할 수 있다.’라고 하셨으니, 이것이 책을 읽는 방법에 대한 일대 단안(斷案)*이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대저 성현의 말씀은 모두 평이(平易)하면서도 명백하니, 너무 천착*해서 별다른 뜻을 찾다가 스스로 혼란 속에 얽혀 들어서는 안 됩니다. 퇴계 선생(退溪先生)은 ‘책을 읽을 때는 별다른 뜻을 깊이 찾을 필요가 없고, 본문에서 현재 있는 뜻을 찾아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이 적당(的當)하고 쉬우니,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경문에는 진실로 두 가지 뜻이 있을 수 있는데 후세 사람들은 해석할 때 반드시 자기 생각으로 헤아려 보고서 가장 근사한 것을 취합니다. 지금 그대가 책을 읽을 때 경전의 뜻과 견해가 다른 것이 있거든 그 견해가 다른 곳에 나아가서 어느 쪽이 더 나은지 헤아려 보고 그 대목을 가만히 읊조리며 생각해 보면 절로 변별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입니다.

 

나의 사사로운 선입견을 가슴 속에 걸어두고서 도리어 선유(先儒)*의 학설을 가지고서 자기 견해에 맞추려 한다면 이는 매우 옳지 못합니다. 그렇게 하려거든 자기 생각대로 글을 쓸 것이지 무엇하러 애써 옛 성현의 책을 읽습니까.

 

― 안정복, 「권철신의 별지에 답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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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안: 어떤 사항에 대한 생각을 딱 잘라 결정함. 또는 그렇게 결정된 생각.

*천착: 어떤 원인이나 내용 따위를 따지고 파고들어 알려고 하거나 연구함.

*선유: 옛 선비. 또는 선대(先代)의 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