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자들이 발굴을 통해 얻은 유물 자료에는 과거 인간의 삶에 관한 극히 단편적인 정보가 남아 있다. 고고학은 이 자료를 통해 과거 인간의 삶을 복원하고자 여러 분야의 이론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진화고고학에서는 인간의 삶은 자연환경에 더욱 잘 적응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보는 진화론에 초점을 맞추어 과거를 설명한다. 진화론이 적용된 사례를 토기의 변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 연구에서는 ㉠서기 1세기부터 약 1천 년 동안 어느 한 지역에서 출토된 조리용 토기들의 두께와, 토기에 탄화된 채로 남아 있던 식재료에 사용된 곡물의 전분 함량을 조사했다. 그 결과 후대로 갈수록 토기 두께가 상당히 얇아지고 곡물의 전분 함량은 ⓐ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진화고고학은 이렇게 토기 두께가 얇아진 이유를 전분이 좀 더 많은 씨앗의 출현이라는 외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이 설명은 두께가 얇은 토기는 상대적으로 열을 더 잘 전달하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우수하다는 사실과 전분이 많은 씨앗들은 높은 온도에서 장시간 끓일 때 음식으로서의 가치가 크게 높아진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즉, 자연환경이 변화하여 껍질이 두껍고 전분 함량이 높은 씨앗이 많아짐으로써 씨앗의 채집량이 늘어날 수 있었고, 이 씨앗은 그 특성상 오래 가열해야 하므로 열전도가 빠른 토기가 사용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 더욱 세밀한 연대 측정을 통해 토기 두께의 변화를 세밀하게 비교해 본 결과, 토기의 두께가 점진적으로 변화한 것이 아니라 4세기경 급작스럽게 변화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전분 함량이 높은 음식이 보편화된 것은 5세기 이후부터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로 인해 토기의 두께 변화에 대한 자연 선택적 설명은 그 설득력이 약화되었다.
한편, 두께가 얇은 토기가 사용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토기 두께의 변화를 ⓑ 초래한 원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두께가 얇아진 토기가 장기간 사용된 이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전분 함량이 높은 곡물을 아기들의 이유식으로 이용한다면 여성들의 수유기가 ⓒ 단축됨에 따라 출산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본다면 두께가 얇은 토기가 오랫동안 사용된 원인을 자연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이유식을 만들기 위한 인간의 능동적 선택에서 찾는 생태학적 이론에 입각한 설명도 가능하다. 생태학적 설명은 진화론적 관점에 근거하지만 인간의 이성적 사유 능력에 따른 선택 과정에 좀 더 주목한 것이다.
진화고고학과는 달리 유물의 의미를 해석할 때 기능적 요인보다는 개개의 유물이 사용된 맥락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고, 그 유물을 사용한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기호 변화 등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유물의 의미를 설명하려는 관점도 있다. 이 관점에서는 4세기경에 토기의 두께가 급격히 얇아지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집단 간의 활발한 교류로 새로운 토기가 유입되었고 사람들이 그것을 선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고학에서는 발굴을 통해 유물 자료가 빠르게 ⓓ축적되고, 주변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새로운 측정 방법이 개발됨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제시된다. 따라서 특정한 이론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자료와 방법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다양한 해석을 하고자 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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