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은 집이 위치하는 지역의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지붕의 형상을 결정짓는 가장 근본적인 조건은 지역의 기후라고 할 수 있다. 지붕의 크기는 ㉠처마의 깊이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처마의 깊이는 처마 폭에 의해 결정되는데, 처마 폭은 도리로부터 지붕 끝까지의 너비를 말한다. 처마가 깊다 깊지 않다 하는 것은 기둥의 높이에 비해 처마 폭이 얼마나 넓은지를 가늠하여 하는 말이다.


처마를 깊게 잡는 구조는 우리 나라 건축의 특색 가운데 하나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태양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은 시원하게, 겨울은 따뜻하게 지내고 싶다는 의지가 작용한 것이다. 우리 나라의 중부 지방, 대략 북위 38도선 부근에서의 하짓날 태양의 남중 고도는 약 70도의 각도를 지닌다. 중천에 뜬 태양이 이글거리며 뙤약볕이 쏟아진다. 그러나 깊은 처마가 차양이 되어 그늘을 드리우기 때문에, 방안이나 대청에서는 나무 그늘 밑에서와 같은 시원함과 청량감을 느끼게 된다. 동짓날 태양의 남중 고도는 대략 35도 가량이다. 낮게 뜬 해가 따뜻한 햇살을 방 속 깊숙히 투사하여 준다. 따뜻해진 공기는 깊은 처마의 삼각상대에 머무른다. 방의 열을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빼앗아 가려고 할 때, 이 삼각상대의 따뜻한 온기가 상당한 저항 작용을 하여, 그만큼의 훈기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


처마를 깊게 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건축 자재의 취약성과 생활 관습을 들 수 있다. 목재가 집을 짓는 자재의 중심이 되던 시절에는 습기에 약한 목재가 빗물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였다. 따라서 낙숫물이 튀어 나무에 닿지 못하도록 처마를 깊게 하였던 것이다. 더구나 농사를 짓는 데는 깊은 처마가 필요하였다. 농사에 쓰이는 연모나 거둔 곡식을 저장하는 일차적인 장소로 처마 밑이 알맞았기 때문이다. 나아가 작업장으로도 유용한 공간이었기 때문에 처마는 점점 깊어지게 되었다.


이렇듯이 자연 여건 및 생활 관습이 반영된 처마는 우리 나라 건축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농가의 자그마한 살림집뿐만 아니라 공공 건축물에도 그대로 채택되어, 규모가 큰 기와집이라 할지라도 깊은 처마를 가지게 되었다. 기와 지붕은 초가 지붕의 구성에서 발달한 것이며, 처마 구성 기법이 발전함에 따라 곡선 모양이 생겨나고, 그에 따라 형태와 아름다움이 갖추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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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