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춤이 가진 특성의 하나를 단적으로 일러 주는 것으로서 “손 하나만 들어도 춤이 된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겉으로는 동작이 거의 없는 듯하면서도 그 속에 잠겨 흐르는 미묘한 움직임이 있어 수많은 움직임을 하나의 움직임으로 집중하여 완결시킨 경지이다. 이를 흔히 ‘정중동(靜中動)’이라고 한다.


한국의 민속악이나 민속춤에서는 ‘장단을 먹어 주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바로 이러한 대목이야말로 불필요한 것이나 잡다한 에피소드를 없애는 순간이다. 그것은 곧 동양 회화에서의 여백에 해당되고, 한국 음악에서 음과 음 사이의 빈 시간․공간을 채워 주는 농현(弄絃)에 해당된다. 고요한 파문을 일으키는 ‘장단을 먹어 주는’ 대목은 맺힌 것을 풀어 주는 이완일 경우도 있고 풀린 것을 맺어 주는 긴장일 경우도 있다. 모든 예술이 다 그렇긴 하지만,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배합하여 맺고 풀고 어르고 당기는 데에 한국 춤의 묘미가 있다. 장단을 먹어 가며 보일 듯 말 듯, 어깨 짓이나 고개 놀림으로 우쭐거리는 ‘허튼 춤’ 같은 데에서 더욱 그러한 맛을 느낀다. 


이렇게 맺고 푸는 연결점의 고리 역할을 더 철저히 하면서도 더 자유 분방한 경우가 있는데, ‘엇박을 타는’ 대목이 그러하다. ㉠‘엇박을 타는’ 대목은 평범한 순차적인 진행 구조에 한 가닥의 파란을 일으킨다. 이렇게 해서 일상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새로운 활기를 부여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순리적이고 동시에 우호적이어서 저항감보다는 오히려 친근감을 더해 준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파격으로 생성되는 흥은 한국적 해학이 되어 한국 예술 전반에 걸쳐 두루 나타난다. 제 흥을 못 이겨 약간 구부정한 몸놀림을 한다든지, 갓을 쓰되 비껴 쓰고, 말을 타되 몸을 곧추세우지 않고 비스듬히 비껴 앉는다든지 하는 한국인의 멋 부림은 일상적인 파격에 연유되어 있다.


이러한 일상적인 파격은 한국적 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지붕의 선은 직선도 아니고 곡선도 아닌, 그리고 무디지도 날카롭지도 않은, 기묘하게 휘어진 선이라고 한다. 조선 백자의 선 또한 그러하다. 기와 지붕의 처마 선처럼 하늘의 빛을 어깨 죽지에 받아 날렵하게 밑으로 흘리되 이를 그 끄트머리에서 다시 모아 고이게 했다가는 조금씩 조금씩 아래로 떨어뜨리는 한국적 선은 버선발의 선이나 소맷자락의 선을 최대한으로 살려내는 한국 춤의 선과 다르지 않다. 이는 멋과 흥을 어깨에 받아 태극선을 그리면서 이를 원심적으로 사지에 펼치며 오금과 돋움새*로 발을 내디디는 한국 춤의 매무새와 일치한다.


한국인의 미적 심성에서는 판에 박은 듯한 글씨나 그림을 높이 평가하지 않고, 도자기를 굽더라도 서로 모양이 다른 것이 나올 때라야 묘미를 느낀다. 똑같은 것을 두 번 다시 되풀이하는 것을 재미없어 하는 것이다. 그만큼 공연 예술의 한 특성인 일회성이 강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춤을 흔히 멋과 흥의 춤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일상적 파격의 요소들이 어우러져 음악과 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때로는 음악과 춤이 전혀 다르게 제각기 제멋대로 공연되기도 하고, 때로는 휘모리로 마구 몰아대는 음악 반주에도 아랑곳없이 아주 느리고 태평스런 춤을 추기도 한다. 이러한 음악과 춤의 극단적인 대비로 오히려 역동이 드러나고, 더 나아가 춤과 음악이 자유로운 불일치를 이루는 데에서 오히려 극치의 조화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결국 한국인은 일상성의 파격을 바탕으로 이미 삶을 예술화하면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므로 한국 춤은 춤추는 이는 말할 것도 없고, 보는 이까지도 ㉡어떤 정신적 깊이에 도달해 있지 않고서는 제대로 출 수 없고, 제대로 향유할 수도 없는 것이다. 


* 돋움새 : 우리나라의 민속 무용의 기본 동작인 발 움직임의 한 가지로 제 자리에서 몸을 위로 돋운 다음 굽힘이 연결되게 하는 준비 동작.



― 채희완, '멋과 신명의 소맷자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