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란 시간을 정지시킨 기록물이다. 정지된 시간은 카메라의 셔터가 찰칵거리는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진 속에 포착된 시간은 과거의 모든 인과 관계를 담고 있다. 우리는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에티오피아 어린이의 사진을 보면서 그 아이가 그동안 얼마나 굶었을까를 생각하고, 전쟁터에 쓰러진 병사의 사진을 보면서는 그 이전에 있었을 참혹한 전쟁의 상황과 병사의 고통을 떠올리게 된다. 이처럼 사진은 과거를 향해 열린 창이며 우리는 그 창을 통해 정지된 시간 이전의 사연들을 들여다본다.


사진은 세계의 이미지를 담은 기록물이다. 모든 초상화가 그렇듯이 사진으로 찍힌 그 시간은 사진이 없어질 때까지 하나의 기호 형태로 저장된다. 또한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기호들처럼 사진도 심리적인 특성들을 갖는다. 그리고 그 기호는 영상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상형 문자 시대 이래 처음으로 다시 갖게 된 상형 문자라고도 말한다. 사진의 기호는 사람이 쓰는 언어와는 아주 다르다. 그것은 주어도 서술어도 없이, 단지 하나의 장면과 어떤 이미지들로 구성된 언어인 것이다. 이처럼 사진은 서술적이라기보다는 단편적이지만, 이미지를 통해 전달 되는 그 의미는 단편적인 것 이상의 것이다.


미국의 사회파 사진 작가 워커 에반스가 1936년에 찍은 ‘어린아이의 무덤’을 보라. 이 사진이 미국의 대공황 시절의 각박하고 어려운 삶을 기록한 사진의 일부라는 것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이 사진은 단순한 한 장의 사진 이상의 것을 생각하게 한다. 흙으로 금방 만들어진 무덤과 무덤 한 가운데 올려진 낡은 그릇은 죽은 어린이와 그 부모의 삶이 결코 풍족하고 편안하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이 경우 사진은 하나의 상징인 것이다. 오래 살아 남는 사진일수록 이러한 상징성이 강하게 들어 있어서, 우리를 깊은 사색에 빠지게 하고 그 사진의 배후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사진은 우리가 세계와 관계를 맺는 하나의 통로가 된다. 사진은 세계를 이미지로 만들어 기록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도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도 사진은 그 사람과 세계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만들어 준다.


사람들은 흔히 사진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담아낸 것이고 사진을 찍는 것은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는 착각을 하곤 하지만, 대부분의 사진에는 찍는 사람이나 찍히는 사람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 그 의도는 나중에 사진을 보는 사람들 - 찍히는 사람과 찍는 사람을 포함해서 - 이 사진을 통해서 어떤 이미지를 느끼고 어떤 사색을 하고 어떤 평가를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관계가 깊다. 사진을 찍는 일 자체가 자신을 포함한 세계에 대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또한 보는 이에게 있어서도 사진은 어떤 대상의 대체물의 기능을 하거나 적어도 사색을 통해 그 대상과 간접적으로 만나게 함으로써, 세계와 관계를 맺게 한다.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모으거나 여행자들이 명승지의 사진을 담은 그림 엽서를 모으는 일도, 결국은 사진을 대상의 대체물로 삼거나 사진을 통해 꿈꾸고 상상하고 평가하면서 세계와 관계를 맺는 하나의 형태라 할 수 있는 것이다.


― 강홍구, ‘미술관 밖에서 만나는 미술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