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서 언급한 홍합은 이 홍합이 아닌데..
자연의 생명체가 보여 주는 행동이나 구조, 그들이 만들어내는 물질 등을 연구해 모방함으로써 인간 생활에 적용하려는 기술이 생체 모방이다. 원시 시대 사용되던 칼과 화살촉은 육식 동물의 날카로운 발톱을 모방해서 만들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비행기 도면을 설계할 때 새를 관찰하고 모방하였다. 그러나 ‘생체 모방’을 공학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나노기술의 발전과 극소량의 물질을 대량으로 생산해내는 유전공학 등 관련 분야의 발달로 비로소 가능해졌다.
바다에 사는 홍합은 심한 파도에도 바위에서 결코 떨어지는 법이 없다. 홍합의 ‘교원질 섬유 조직’은 바위에 자신의 몸을 붙이는 데 사용되는 생체물질로, 물에 젖어도 ㉠떨어지지 않는 첨단 접착제로 주목받고 있다. 이 조직은 근육을 뼈에 부착시키는 사람의 건섬유보다 5배나 질기고, 잡아당길 때 늘어나는 신장력은 16배나 크며, 인체에 사용하여도 면역 거부 반응이 없다. 그래서 의학적으로 사용되어 의사가 환자를 수술한 후 상처를 실로 꿰맬 필요 없이 접착제를 바르기만 하면 되고, 기존의 화상 환자는 이식 수술을 받아도 다른 부위의 살을 떼어내야 하기 때문에 흉터가 남지만, 홍합이 만들어 내는 ‘교원질 섬유 조직’을 이용해 인공 피부를 이식하면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또 하나, 바다 밑바닥에 사는 거미불가사리는 밝은 곳에서는 물론이고, 어둠 속에서도 적의 접근이나 은신처를 매우 빨리 알아내 정확하게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한 연구소에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거미불가사리의 몸통과 팔을 연결하는 부위에는 탄화칼슘으로 이루어진 방해석이라는 미세한 수정체들이 무수히 박혀 있으며, 이 수정체들은 작은 빛도 받아들여 이것을 광학적 신호로 전환해 신경망으로 전달한다고 한다. 이 수정체가 마이크로 렌즈의 역할을 하는 것인데, 이를 모방하여 사람 머리카락 지름의 10분의 1정도 크기의 패턴을 갖는 방해석 단일 결정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 결정체는 인간의 기술로 개발된 어떤 렌즈보다 훨씬 더 작으면서도 아주 정확하게 빛에 초점을 맞추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거미불가사리의 둥근 초소형 수정체와 신경망 작동 시스템은 주변 상황 변화에 적응하는 고성능 광학렌즈는 물론 최신형 초고속 광통신망의 개발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비가 오더라도 연잎에 물방울이 스며들지 않고 오히려 굴러 떨어지는 것이 연잎 위에 올록볼록하게 돋은 수백 나노미터 크기의 수많은 돌기 덕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이것을 ‘연잎 효과’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효과는 연잎에 먼지가 닿아도 먼지가 잎에 붙지 않고 얹혀 있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아주 작은 힘만 가해도 먼지를 제거할 수 있다. 이런 능력을 응용하면, 비만 오면 저절로 깨끗해지는 유리창, 물만 한 번 내리면 깔끔해지는 변기 등을 만들 수 있다.
35억 년 역사를 가진 지구에는 수백만 종의 동식물이 살고 있다. 그들은 긴 시간을 겪으면서 환경에 적응했으며, 서로 다른 특징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능력이 밝혀진 것은 아주 미미하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동식물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가 간직한 비밀의 열쇠를 찾아 인간 생활에 적용함으로써, 자연과 기술을 조화롭게 응용하여 인간을 이롭게 하자는 것이 생체모방공학의 목적이다.
이제 과학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자연을 배우고자 한다. 자연을 배우고, 자연을 모방한 과학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을 위한 과학이 아닌가 생각한다.
― 한국산업기술연구원, 『생체모방공학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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