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사에서 나노 기술 혁명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인류는 농업 시대에는 땅을 정복하였고, 산업 시대에는 자동차 · 비행기를 통해 공간을 정복하였으며, 컴퓨터와 인터넷을 발명하면서 시간을 정복하였다. 그에 이은 나노 기술 혁명을 통해서는 나노 크기의 영역에서 물질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제어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물질을 정복하게 될 것이다. 


나노 기술 구현의 최대 난제는 나노 물질의 인위적 제조이다. 나노 물질은 ‘나노 점(點)’, ‘나노 선(線)’, ‘나노 박막(薄膜)’의 형태로 구분된다. 나노 박막의 경우에는 원자층 두께까지 제조가 가능한 상태이지만, 나노선과 나노점을 제조하는 기술은 아직 초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노선과 나노점을 만들기 위해 하향식과 상향식의 두 가지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하향식 방법은 원료 물질을 전자빔 등을 이용하여 작게 쪼개는 방법인데, 현재 7나노미터 수준까지 제조가 가능하지만 생산성과 경제적 효용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시도되고 있는 상향식 방법에서는 물질을 작게 쪼개는 대신 원자나 분자의 결합력에 따른 자기 조립 현상을 이용하여 나노 입자를 제조하려 한다. 상향식 방법은 경제적 측면에서는 하향식에 비해 훨씬 유리하나 균일한 나노점이나 나노선을 구현하기 위해서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난점들이 많다는 문제가 있다. 


나노 기술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칠 분야는 정보 기술 분야이다. 지금까지의 정보 기술은 반도체 메모리를 중심으로 소형화, 고집적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100나노미터 이하의 크기에서는 64기가바이트 이상의 고집적화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는 것이 나노 자성체를 이용한 자기 메모리인데, 이것이 성공하면 테라급 메모리의 구현이 가능하다고 한다. 자기 메모리는 집적도가 우수할 뿐만 아니라 전력 소비도 매우 적어, 조만간 현재의 반도체 플래시메모리를 대신하여 이동 통신 기기나 휴대용 컴퓨터에 이용될 것이다. 


생체의 상태가 나노 크기 분자의 움직임에 좌우되기 때문에 나노 기술의 혁명은 생명 공학과 의학의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리라 전망된다. 다양한 생체 현상을 나노 수준에서 이해하고 응용한다면 새로운 개념의 바이오센서나 약물 전달 시스템 등이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여섯  개의 단백질로 만들어진 나노 크기의 모터가 인간 몸 속의  ATP를 연료로 구동되어, 수십 나노미터의 플라스틱 공을 움직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나노 기술 연구는 초기 단계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얇은 금속선 제조에 성공하는 등 세계적 수준의 연구 업적들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공정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이 기술과 경험을 활용하고 창의적 연구 인력을 확대해 나가는 국가적 차원의 전략이 마련된다면, 선진국과 대등한 기술 경쟁을 하며 새로운 발견과 발명의 진원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신성철, ‘나노 기술의 중요성과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