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루의 작동 원리


1434년 7월 1일. 조선 왕조는 자격루(自擊漏)라고 불리는 자동 물시계를 국가의 새로운 표준 시계로 채택했다. 세종의 명을 받은 장영실은 더 정확한 물시계를 만들기 위해 시각을 측정하는 잣대의 길이를 4배 가량 키워 눈금을 세밀하게 새 겨 넣고, 물받이 통을 비울 때도 연속적으로 시간을 잴 수 있게 통을 2개로 늘렸다. 여기에 자동으로 시간을 알려 주는 장치를 더하여 자격루를 완성하였다.


자격루는 시각을 측정하는 물시계, 물시계에서 측정된 시간 을 소리로 바꿔 주는 시보 장치, 물시계와 시보 장치를 연결해 주는 방목(方木) 등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만 원짜리 지폐에서 볼 수 있는 물시계 부분은, 물을 공급하는 항아리인 파수호에서 물을 흘려 보내면 물받이 통인 수수호에 물이 고이는 구조로 되어 있다. 수수호에 띄워 놓은 잣대가 고인 물의 부력에 의해 떠오르면 잣대에 새긴 눈금을 읽어 시각을 알아낸다. 따라서 물시계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수수호를 튼튼하게 제작하여 물이 가득 찼을 때 받는 수압에도 변형되지 않도록 만들 필요가 있었다. 실제 자격루의 수수호는 지금까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시보 장치의 상단에 설치된 3개의 시보 인형은 시(時), 경 (更), 점(點)마다 각각 종, 북, 징을 쳐서 시간을 알린다. 시보 인형 가운데 하나는 시를 알려준다. 매시각마다 인형의 팔뚝과 연결된 제어 장치가 작동하여 인형의 팔뚝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종을 울리게 한다. 시를 담당한 인형이 종을 울리면 곧이어 시보 장치 하단에서 12지신 가운데 그 시에 해당하는 동물 인형이 시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나온다. 예를 들어 자시(子時)에는 쥐 인형이 ‘자(子)’라는 글자가 적힌 팻말을 들고 나와 지금 울린 종소리가 자시라고 알려준다. 이러한 일련의 동작은 시보 장치 안에 있는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기계에 의해 자동으로 진행된다. 경과점을 알려 주는 다른 2개의 인형은 경점법이라는 우리의 고유한 시간 표시 방법에 따라 작동하면서 시간을 더 자세하게 알려 준다.


아날로그-디지털 신호 변환기의 원리가 들어 있는 방목은 시보 장치가 자동으로 작동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한다. 즉, 수수호에 물이 차올라 잣대가 떠오르면서 방목 안에 설치된 장치가 구리로 만든 작은 구슬을 차례대로 떨어뜨린다. 연속적으로 흘러내리는 물의 양인 아날로그 신호가 일정한 간격마다 구슬이 떨어지는 불연속적인 디지털 신호로 변환되는 것이다. 그리고 구슬이 떨어지면서 발생하는 운동 에너지는 시보 장치에 전달되어 시간을 알려 주는 데 사용된다. 한마디로 말해 자격루는 디지털 방식을 도입한 기계식 시계인 셈이다.


한편, 조선 왕조에는 자격루가 제작되기 전부터 시간을 측정하고 알려 주는 일을 담당하는 관청이 있었다. 물시계를 맡은 관리는 밤낮으로 물시계를 지켜보면서 시간을 알려 주었는데, 가끔씩 제때를 놓쳐 처벌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동 시보 장치를 가진 정확한 물시계의 제작은 모든 시계 제작 기술자의 꿈이었으며, 예로부터 정확한 시간을 알려 줄 책무를 지닌 왕의 소망이기도 하였다. 자격루는 그 꿈을 실현 시킨 15세기의 첨단 기술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