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류 없는 배가 바다를 달리는 것이 가능할까? 초전도 선박이라면 가능하다. 1992년 시험 운행을 통해 선을 보인 초전도 선박은 스크류로 인한 소음과 진동이 없으면서도 고속으로 운항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거기에는 ‘초전도 현상’이란 비밀이 담겨 있다. 

 

초전도 현상은 어떤 특정 온도(임계온도) 이하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성질을 말한다. 이 현상은 네덜란드의 오네스(Heike Onnes)가 처음 발견했다. 그는 기체인 헬륨을 압축하여 절대온도 4도(섭씨 -269도)의 액체로 만드는 데 성공하였고, 이 액체 헬륨을 이용하여 물질의 온도를 절대온도 0도에 가깝게 냉각시킬 수 있었다. 그는 수은을 냉각시키면서 전기저항을 측정하던 중 절대온도 4.2도 근처에서 수은의 저항이 급격히 사라져 결국 0이 되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초전도 현상의 원인에 대한 설명은 반세기가 지나서야 이루어졌는데, 공동 연구자들의 이름 첫 자를 딴 BCS이론이 그것이다. 금속이 저항을 갖는 것은 전자가 흐를 때 금속 이온에 부딪히기 때문인데, 이 이론에 따르면 초전도 상태에서 전자들은 둘씩 짝을 지은 ‘쿠퍼쌍’을 이룬다. 쿠퍼쌍은 금속 이온의 방해에 관계없이 액체처럼 흐를 수가 있고, 그래서 전기저항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물질을 초전도체라 하는데, 초전도체는 완전한 전기 전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손실 없이 전기를 수송할 수 있으며, 이것으로 만든 코일을 사용하면 대단히 우수한 전자석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초전도체는 완전 반자성의 성질도 지니고 있다. 완전 반자성이란 주위에 자기장이 있을 때 물질의 표면에 표면 전류가 흘러 그 자기장을 없애 버리고 내부에 자기장이 전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성질을 말한다. 이러한 완전 반자성의 반발 작용을 이용하면, 자석 위에 초전도체를 두어 공중에 떠오르게 하거나 반대로 초전도체 위에 자석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

 

초전도 현상이 워낙 낮은 온도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초전도체의 실용화를 위해서는 그 임계온도를 최대한 높일 필요가 있다. 과학자들은 다양한 초전도물질의 개발을 통해 임계온도를 꾸준히 높여 가고 있고, 초전도체는 이미 의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응용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MRI라고 부르는 핵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에는 강력한 자석이 필요한데, 이 자석은 초전도 전선에 강력한 전류를 흘려 만든다. 미래의 에너지 제조원으로 꼽히는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도 초전도자석이 필요하며, 초전도자석의 자기부상 효과는 자기부상 열차의 핵심 원리로 사용된다. 앞에서 소개했던 초전도 선박의 힘의 근원도 초전도자석이다. 선체 밑에 초전도자석을 설치하여, 이것으로 해수에 자기장을 걸어 주고 전류를 흘리면 플레밍의 왼손 법칙에 따른 전자력이 생기는데, 그 힘을 배가 운항하는 추진력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제 절대온도 25도 이상에서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고온 초전도체의 등장이 현실화되면서, 전 세계의 국가들은 조금이라도 더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물질을 만들고 이를 응용하기 위한 무한 경쟁에 나서고 있다.

 

― 신동호, ‘한국의 과학자 33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