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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지력과 이성을 가진 존재이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이 그러한 명칭에 어울리는 존재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대량 살상이 세계 도처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동물들 중에서 유독 인간만이 자신의 종족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점과 관련하여 로렌츠의 진단과 처방은 주목할 만하다. 조건화된 환경의 영향을 중시하는 스키너와 같은 행동주의와는 달리, 그는 동물 행동의 가장 중요한 특성들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인간을 진화의 과정을 거친 동물의 하나로 보는 그는, 공격성은 동물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의 하나이기에, 인간에게도 자신의 종족을 향해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생득적인 충동이 있다는 것이다. 진화의 과정에서 가장 단합된 형태로 공격성을 띤 종족이 생존에 유리했으며, 이것이 인간이 호전성에 대한 열광을 갖게 된 이유라고 로렌츠는 설명한다. 


로렌츠의 관찰에 따르면 치명적인 발톱이나 이빨을 가진 동물들이 같은 종의 구성원을 죽이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중무장한 동물의 경우 그들의 자체 생존을 위해서는 자기 종에 대한 공격을 제어할 억제 메커니즘이 필요했었고, 그것이 진화의 과정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라고 로렌츠는 설명한다. 그에 비해서 인간을 비롯한 신체적으로 미약한 힘을 지닌 동물들은, 자신의 힘만으로 자기 종을 죽인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경우 억제 메커니즘에 대한 진화론적인 요구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은 살상 능력을 지니게 되었고, 억제 메커니즘을 지니지 못한 인간에게 내재된 공격성은 자기 종을 살육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에 내재된 공격성을 제거하면 되지 않을까? 이 점에 대해서 로렌츠는 회의적이다. 우선 인간의 공격적인 본능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포함해서 오늘날 인류를 있게 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기에 이를 제거한다는 것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으며, 또 공격성을 최대한 억제시킨다고 해도 공격성의 본능은 여전히 ㉡배출구를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다면 인류에게 희망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렌츠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보여 준다. 그는 이성이 인간의 공격성 자체를 제거할 수는 없으나, 공격성의 본능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는 있다는 입장을 보인다. 그 첫째 방안은 자신에 대해 자각하는 것인데, 이는 우리가 인간의 공격성의 본질을 이해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 방향을 수정하는 이성적 단계를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그는 타고난 공격성의 배출구를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는 증오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경쟁을 허용함으로써 호전적 열광을 충족시킬 기회를 마련해 주자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공격성의 대상이 될 만한 개인들이나 다른 집단과의 우정을 증진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며, 젊은 세대들이 몸 바쳐 봉사할 가치가 있는 진정한 대의명분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처방을 통해 로렌츠는 인간의 공격성이 초래할 끔찍한 비극을 막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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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딸림 문항의 <보기>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시계태엽 오렌지」는 인간의 공격성과 관련지어 음미해 볼 만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알렉스는 폭력적 성향의 인물로, 길거리의 노인을 이유 없이 폭행하고 남의 집에 무단 침입하여 폭행을 일삼는다. 그러다 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그는 그곳의 강압적 교정 기술에 의해 ‘착한 인간’이 된다. 그 후 그는 나쁜 생각만 해도 구토를 하고 심한 고통을 느낀다. 사회로 돌아온 후 자신의 몸조차 지키지 못할 정도로 망가진 그는 절망 끝에 자살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