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앙 볼탕스키, <1939년에서 1964년 사이, D가족 앨범>



모더니즘 예술가들은 예술의 순수성과 독자성을 강조하여 서로 다른 문화 간의 양식이나 이미지 ⓐ차용을 거부했다. 이와 달리 개념미술가들은 예술적 메시지의 전달을 위해 통속적이라 인식되었던 기성품들까지 작품의 오브제*로 사용함으로써 기존의 예술 작품과 다른 양식의 작품을 창조했다. 특히 볼탕스키는 비전문가가 사적 일상이나 행사를 기록할 목적으로 찍은 아마추어 사진을 자신의 작품에 오브제로 사용하여 전시 공간으로 옮김으로써 새로운 미적 기능을 가지게 했다.


볼탕스키가 아마추어 사진을 오브제로 활용한 것은 그것이 갖는 특징인 이데오그램과 소시오그램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데오그램은 사회가 공유하는 사진의 ⓑ전형적 스타일을 의미하는데, 아마추어 사진에서의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 고정된 시선, 상황에 따른 정형화된 자세와 같은 전형적인 포즈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리고 소시오그램은 개인들 간의 사회 문화적 관계 양상을 드러내는 사회적 지표이다. 결혼식이나 축제 등을 기록하고 기념할 목적으로 찍은 아마추어 사진은 가족이나 사회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드러냄으로써 그들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감정을 재확인하고 공동체의 결속을 이끄는 역할도 한다.


볼탕스키는 이러한 특징을 지닌 아마추어 사진을 오브제로 활용하여 감상자로 하여금 오랫동안 ⓒ고착화된 사회적 규범체제나 공동체의 특징과 같은 일종의 문화적 코드를 읽게 함으로써, 작품 해석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일상적인 가족사진을 오브제로 사용한 작품을 바라보는 감상자는 ㉠오브제인 아마추어 사진이 나타내는 이데오그램을 통해 문화적 코드를 읽어낼 수 있고, 소시오그램을 통해 특정 가족의 삶의 모습에서 연상되는 자신의 과거나 동시대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며 능동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그는 사람들이 사진을 진짜라고 믿는 마음을 역이용하여 사진이 갖는 사실성과 허구성이라는 양면성을 드러냄으로써, 사진에 부여된 진실성을 의심하고 사진을 다의적으로 읽을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했다. ‘진짜’처럼 여기도록 아마추어 사진을 반복적으로 재촬영하여 원래 사진의 이미지를 일부러 흐리게 만들거나 자신의 의도에 따라 사진을 재배열하기도 했다. 또 드러내 놓고 제목이나 설명과 같은 텍스트를 사진과 엉터리로 ⓓ조합하여 감상자가 이를 쉽게 알아챌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진이 보여 주는 것이 진실인지, 텍스트가 보여 주는 것이 진실인지 감상자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이처럼 볼탕스키는 일상적인 아마추어 사진을 오브제로 사용함으로써, 보편적이고 공통된 문화적 특징을 이해하게 하고 사실과 허구가 공존하는 사진의 양면성을 작품을 통해 드러냈다. 이를 통해 현대 사회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감상자의 의식적인 이미지 읽기를 ⓔ권고하고 있다.


*오브제: 어떤 대상이 작품의 소재가 되어 그 본래의 용도나 기능은 사라지고 새로운 느낌을 일으켜 예술 작품화될 때의 사물을 이르는 말.


― 이경률, 「현대 미술 사진과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