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바닷물은 영하의 온도에도 얼지 않는다. 또한 혹한 지역의 일부 생명체들은 추위 속에서도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이는 모두 어는점 내림 현상과 관련이 있다.


어는점 내림 현상이란 무엇일까? 어는점은 액체가 얼기 시작할 때의 온도를 말하는데, 순수한 물의 어는점은 일반적으로 0℃이다. 이때 ‘물이 언다’라는 것은, 온도가 0℃ 이하로 내려가면서 액체 상태에서 불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던 물 분자가 규칙적으로 정렬하여 고체인 얼음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용매인 물에 다른 물질, 즉 용질이 녹아 있으면 용질의 분자들이 물 분자의 정렬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물만 있을 때보다 어는점이 내려가는데 이를 ‘어는점 내림 현상’이라 한다. 이때 용질의 종류나 특성이 아닌, 용질의 양에 의해서 어는점 내림과 같은 변화가 일어나는 성질을 ‘용액의 총괄성’이라 한다. 염분의 농도가 3.5%인 일반적인 바닷물의 경우, 많은 양의 소금이 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으로 물에 녹아 그 이온들이 물 분자의 정렬을 어렵게 하기 때문에 얼음이 쉽게 형성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바닷물은 총괄성에 의한 어는점 내림으로 0℃가 아닌 –1.9℃에서 얼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남극 빙어의 경우 총괄성에 의한 어는점 내림만으로는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는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물고기의 경우 물의 온도가 어는점 아래로 내려가면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얼음 결정들이 혈액이나 체액 내에 생기기 시작한다. 이 조그마한 얼음 결정들이 방치되면 물 분자들이 얼음 결정과 결합하여 얼음 결정이 순식간에 커져 결국 물고기는 죽고 말 것이다. 그런데 남극 빙어의 혈액 속에는 결빙방지단백질이라는 물질이 있어서 얼음 결정이 커지는 것을 막는다. 그렇다면 어떤 원리에 의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먼저 결빙방지단백질이 녹아 있는 물에 얼음 결정이 들어 있고 어는점 아래로 온도를 낮춘다고 가정해 보자. 얼음 결정의 표면에는 물 분자가 얇게 물 층을 이루고 있는데, ㉠그 얇은 물 층에 결빙방지단백질이 순식간에 결합한다. 결빙방지단백질이 결합된 부분에는 더 이상 물 분자가 결합하지 못한다. 따라서 얼음 결정의 물 층은 물 분자가 계속해서 결합하는 부분과 결합하지 못하는 부분으로 나눠진다. 이렇게 되면 물 분자가 결합할 수 있는 부분은 결합이 계속 이루어져 ㉡볼록한 모양의 물 층이 형성된다. 그 결과 평평했던 얼음 결정의 물 층이 볼록하게 되어 표면적이 넓어지므로, 평평했을 때보다 물 층의 표면에 있는 물 분자의 수도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이때 물 층 표면에 있는 물 분자들은 불안정한 상태이다. 


<그림>



<그림>은 물 층에 존재하는 물 분자 간의 결합 상태를 나타낸 것으로 화살표는 물 분자 간의 인력을 의미한다. <그림>의 ㉯는 물 층 내부에 있는 물 분자로서 모든 방향으로 동일한 인력이 작용하므로 안정적인 상태이다. ㉮는 물 층 표면에 있는 물 분자로서 인력이 작용하는 방향이 한정적이므로 불안정한 상태이다. 따라서 ㉮는 ㉯에 비해 불안정한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의 분자들은 다른 분자들과 결합하려는 힘이 더 큰데, 이는 에너지가 높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물 층이 볼록해지는 과정을 통해 평평한 상태일 때보다 물 층에 불안정한 상태의 물 분자들이 더 늘어났으므로, 얼음 결정의 물 층 표면의 에너지는 더 높아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물의 에너지와 얼음 결정의 물 층 표면의 에너지는 동일한 상태가 되는데, 이를 열적 평형이라고 한다. 열적 평형이 되면 물 분자가 얼음 결정에 더 이상 결합하지 않게 되어 얼음 결정이 커지지 않는다. 즉, 어는점이 내려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결빙방지단백질이라는 특정한 물질, 즉 용질의 종류로 인해 발생한 어는점 내림이라고 할 수 있다.



― (출전) 김학준 외, 「극지과학자가 들려주는 결빙방지단백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