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서, '돌 깨는 석공'


회화사적으로 공재 윤두서의 면모를 드높여주는 것은 서민을 소재로 한 속화(俗畵)이다. 그는 선비나 신선 아니면 미인 정도가 나오던 조선전기 회화에서 벗어나 현실 속에서 일하는 사람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이렇게 ‘서민’이 선비나 신선의 자리를 밀어내고 화폭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자리 잡게 된 것은 회화적 혁명으로 볼 수 있다.


회화에서 화가가 그림의 소재로 삼는 것은 그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공재는 일하는 서민들을 직접 관찰한 후, 몸동작이나 얼굴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섬세한 붓끝으로 화폭에 담아냈다. 이는 몸으로 체득하고 그것을 실현하는 사실주의 정신 내지는 실학 정신과 관련된다.


공재의 그림 <돌 깨는 석공>에는 망치를 든 석공이 돌을 깨려는 순간, 정(釘)을 잡은 석공은 얼굴에 파편이 튈까봐 몸을 뒤로 기울이며 눈을 찡그리고 있는 표정이 절묘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그림의 배경은 채석장이 아니라 선비나 신선이 있었음직한 산수화의 배경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렇게 공재의 그림은 배경 처리가 여전히 비현실적이어서 조선 후기 김홍도나 신윤복의 속화만큼 박진감은 못하다는 한계가 있다. 공재의 이러한 그림의 특징은 ‘현실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그림 속에 현실을 집어넣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이 현실의 한 장면을 잡아내어 이를 그림으로 표현했다면, 공재는 기존의 그림 속에 현실을 삽입시켜 전통 회화의 틀을 지키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성을 구현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런 방식은 18세기 사실주의 회화의 관점에서는 다소 미흡해 보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현실 인식을 그림 속에 반영하려 한 것이 공재의 사실주의 정신인 것이다.


그의 그림의 또 다른 특징은 ‘자기화(自己化)’에 있다. 공재는 상당히 많은 화보(畵譜)*를 보고 이와 유사한 그림을 그렸는데, 이 때 화보에 담긴 그림을 무작정 그대로 베낀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자기화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중국의 『고씨화보』에 있는 <주상오수(舟上午睡)>라는 그림은 한 인물이 배를 타고 강변 절벽에 솟아오른 소나무 그늘 아래 낮잠을 즐기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공재는 이 그림에서 소나무의 표현만을 빌어 왔을 뿐, 자신의 그림인 <송하한담도>에서는 배경을 강이 아닌 산으로 새롭게 구성하여 변용하였다. 이는 화원의 그림처럼 겉모습을 따라 그리는 기교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그의 생각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윤두서, '송하한담도'

  

그는 조선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시대의 흐름을 명확히 인식하고 실천함으로써 18세기 사실주의 회화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 화보 : 여러 그림을 모아 만든 책


― 유흥준, '화인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