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2005 (40)

독서/인문

규장각(2005, 9월모평)

조선 왕조는 유교 정치를 표방하여 오래도록 문(文)을 숭상하였다. 규장각은 이러한 전통 아래 정조(正祖) 때 왕실 도서관 겸 학술연구기관으로 출발하여, 나중에 정책 연구의 기능까지 발휘한 특별 기구였다. 규장각은 정조가 즉위하던 해(1776년)에 창설되었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발족이 아니라, 정조가 동궁(東宮) 시절에 경희궁에 살면서 설치.운영해 온 기구를 발전시킨 것이었다. 정조는 즉위한 다음날 창덕궁 후원의 연지(蓮池) 북쪽 언덕에 이층 건물을 새로 짓도록 하고 이름을 주합루(宙合樓)라 하였다. 이 건물 1층의 이름을 처음에는 어제존각(御製尊閣)이라 하였다가 얼마 후 규장각(奎章閣)으로 개칭하여 자신의 왕위(王威), 즉 국왕으로서의 위엄에 관련되는 자료들을 보관하기 로 하였다. ‘규장’이란 본래 제..

독서/독서이론・언어

컴퓨터가 가져온 표기방식의 변화(2005, 고3, 7월)

문자 발달의 역사를 살펴보면, 문자의 모양과 필서 방법은 당시에 쓰였던 필기도구에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양피지에 긁어 썼을 때의 글자 모양과 파피루스에 그려 넣었을 때의 모양, 그리고 돌기둥에 새겨 넣었을 때의 모양, 종이 위에 붓으로 썼을 때의 모양이 각각 달랐던 것은 필기도구의 변화가 글자의 형태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종이와 연필 같은 전통적인 필기도구가 컴퓨터라는 새로운 매체로 대체되고 있다. 컴퓨터는 종래의 필기도구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컴퓨터 자체가 필기도구인 동시에 필기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의 종이와 연필, 혹은 양피지와 펜으로 나뉘었던, 문자가 쓰이는 공간과 문자를 쓰는 도구와의 구분이 컴퓨터에 이르면 모호해진다. 결국..

독서/기술

구텐베르크 인쇄술(2005, 고3, 7월)

유럽에서 1455년 금속활자 인쇄술이 생겨나기 이전의 책은 주로 필경사들의 고단하고 지루한 필사 작업을 통해서 제작되었다. 당시의 책은 고위층이 아니면 소유하거나 접근하기 힘든 대상이었다. 그러나 인쇄술의 보급 이후 반세기 동안에 유럽인들은 무려 천만 권이 넘는 서적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유럽 사회를 근대 사회로 탈바꿈하게 한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도 이 기술의 보급이 아니었다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나고 말았으리라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지난 1천 년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었던 발명으로 간주되고 있는 이 금속활자 인쇄술은 어떻게 발명된 것일까? 금속활자 인쇄술을 고안하고 실용화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독일의 구텐베르크(Gutenberg)로 알려져 있다. 구텐베르크는 귀족 출신이었으나 금속..

독서/사회

신유목 시대(2005, 고3, 7월)

세계사는 유목 민족과 정주 민족 간 투쟁의 역사이다. 유목 민족은, 농경을 주업으로 하여 문명에서 앞서간 정주 민족에게 결국 패배하였다. 유럽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용맹한 유목 민족인 훈족 역시 역사에서 흔적 없이 소멸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새로운 유목 민족이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이들은 과거의 기마병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속도로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국경을 무너뜨리고 끊임없이 영토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처럼 신유목 시대를 열고 있는 종족이 바로 21세기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디지털 노마드*이다. 프랑스의 지성 자크 아탈리는 ‘21세기는 정보기술(IT)을 갖추고 지구를 떠도는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라고 예언했다. 신유목 시대는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을 추구하는 세계화와 관련이 있다...

독서/과학

생명이란 무엇인가?(2005, 고3, 7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과학이 도전하고 있는 난제 중 하나이다. 영국의 과학 주간지 는 지난 특집에서 ‘생명의 10대 수수께끼’를 다루었다. 이 중 상당수는 해묵은 것들이지만 몇 가지는 오늘날 우리가 생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상(像)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상을 떠받치는 가정들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준다. 먼저 ‘우리는 지금도 진화하는가’라는 물음에 많은 사람들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어딘지 낯선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진화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진화를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선 듯한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역시 진화의 흐름에서 열외일 수 없다. 다윈은 진화의 두 가지 메커니즘으로 유전 가..

독서/인문

융의 단어연상법(2005, 고3, 7월)

‘단어 연상법’은 프랜시스 갤턴이 개발한 것으로서, 지능의 종류를 구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피실험자에게 일련의 단어들을 또박또박 읽어주면서 각각의 단어를 듣는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말하게 하고, 실험자는 계시기를 들고 응답 시간, 즉 피실험자가 응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여 차트에 기록하는 방법으로 진행한다. 실험은 대개 1백 개 가량의 단어들로 진행했다. 갤턴은 응답 시간을 정확히 ⓐ재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정보의 양은 거의 없거나 아니면 지능의 수준을 평가하는 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융은 이 실험에서 응답 시간이 늦어질 경우 피실험자에게 왜 응답을 망설이는지 물어보는 과정을 추가하였다. 그러자 놀랍게도 피실험자는 자신의 응답 ..

독서/예술

속악과 시나위(2005, 고3, 7월)

우리나라의 전통 음악은 대체로 크게 정악과 속악으로 나뉜다. 정악은 왕실이나 귀족들이 즐기던 음악이고, 속악은 일반 민중들이 가까이 하던 음악이다. 개성을 중시하고 자유분방한 감정을 표출하는 한국인의 예술 정신은 정악보다는 속악에 잘 드러나 있다. 우리 속악의 특징은 한 마디로 즉흥성이라는 개념으로 집약될 수 있다. 판소리나 산조에 ‘유파(流派)’가 자꾸 형성되는 것은 모두 즉흥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즉흥으로 나왔던 것이 정형화되면 그 사람의 대표 가락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독특한 것이면 새로운 유파가 형성되기도 하는 것이다. 물론 즉흥이라고 해서 음악가가 제멋대로 하는 것은 아니다. 곡의 일정한 틀은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변화를 주는 것이 즉흥 음악의 특색이다. 가령 판소리 명창이 무대에 나가기 전에..

독서/과학

논리 실증주의적 관점에서의 과학적 지식 생성 과정 - 연어의 회귀 연구를 중심으로(2005, 6월모평)

과학적 지식은 어떻게 생성될까? 이에 대한 설명은 과학 철학적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경험적 검증 가능성에 의해 과학적 진술의 의미를 판가름하는 논리 실증주의적 관점이다. 연어의 회귀에 대한 연구 과정을 통해 과학적 지식의 생성 과정을 논리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과학자들은 연어가 어떻게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지 알고 싶었다. 인디언들은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연어가 회귀한다고 믿고 있었는데, 과학자들은 이러한 설명이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없기 때문에 과학적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과학자들은 시각 가설, 지구 자기장 가설, 후각 가설과 같은 설명 방법을 생각해 냈다. 시각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미국 북서부 지역 의 두 하천인 이사콰와 포크에 도착한 연어들을 ..

독서/사회

남녀 성차를 언급하는 것(2005, 6월모평)

최근 미국의 한 대학 총장이 “여성은 선천적으로 수학과 과학 능력이 떨어진다.”라고 발언했다가 거센 반발을 샀다. 이처럼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남녀 사이의 특성 차이를 거론한다. 지능 지수의 평균 점수는 차이가 없지만, 검사 결과를 유형별로 분석해 보면 의미 있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성은 언어적 능력에서, 남성은 수학적 능력과 공간 지각 능력에서 우수하다는 증거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지적인 능력은 아니지만 공격성이라는 특성에서도 성차(性差)가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남녀 간에 성차가 존재한다고 보는 이들은 그 원인을 환경적 요인이나 유전적 요인으로 설명한다. 유전적 설명에서는 남녀가 몇 가지 특성에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유전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환경적 설명에서는 성차가 사회적..

독서/기술

기술적 모순과 물리적 모순(2005, 6월 모평)

발명의 이론으로 알려진 트리즈(TRIZ)는 창의적 문제 해결을 위한 이론으로서, 구 소련의 겐리히 알츠슐러에 의하여 탄 생하였다. 그는 4만 건의 특허를 분석한 결과, 우수한 특허는 모두 모순을 극복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였다. 그 후, 알츠슐 러는 모순의 극복이라는 관점에서 연구를 계속한 끝에 모순을 기술적 모순과 물리적 모순으로 유형화하여 그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게 되었다. 기술적 모순이란 두 개의 기술적 변수의 값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가령 비행기의 속도를 높이려면 출력이 높은 엔진을 장착해야 한다. 그런데 출력을 높이려면 엔진이 커져야 하고, 그에 따라 엔진은 무거워진다. 결국 출력이 높은 엔진을 장착하면 비행기의 무게가 증가하여 속도는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가벼운 엔진을 장착하면 출력의..

독서/사회

공론장으로서의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2005, 6월모평)

오늘날 널리 회자되고 있는 공론장(公論場)이라는 용어는 공적 문제에 대한 개인의 의견이 공적 영역으로 확장되는 공개된 담론의 장(場)을 말한다. 즉 사회적 의제(議題)에 대해 개인이 자신의 의견과 신념을 표현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해 가며, 이 과정에서 형성된 건전한 여론을 국가의 정책에 반영하는 장이란 뜻이다. 이러한 공론장은 민주주의의 요체라 할 수 있는 집회 및 결사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하겠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이 분출되면서 공론장의 필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사람들은 최근 방송 편 성이 늘고 있는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이 공론장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텔레비전 토론 프 로그램이 진정..

독서/예술

분청사기의 역사적 형성 과정(2005, 6월모평)

분청사기는 전통 도자 양식 중 하나로서 점토[청자토]로 만든 형상 위에 화장토[백토]를 칠한 전후에 바탕을 장식하고 유약을 발라 구워 낸 그릇을 말한다. 고려 말 퇴락해 가던 상감청자의 뒤를 이어 등장한 분청사기는 조선 중기 이전까지 널리 쓰였다. 우리나라 도자기 중에서는 가장 순박하고 서민 적이며, 일상의 생활 용기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예술적 조형미도 매우 뛰어났다. 퇴락해 가는 예술로부터 태어나 실용적 목적에서 사용되었던 분청사기는 어떻게 해서 예술성을 얻게 되었을까? 분청사기의 역사적 형성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는 국가에서 도자의 생산과 유통을 관장하였다. 서남해안 일부 지역에 설치되었던 관요(官窯)에서는 국가의 강력한 보호와 규제 속에 상감청자..

독서/사회

청소년의 길거리 문화(2005, 6월모평)

많은 성인들은 청소년 문화가 하위 문화의 특성을 띠고 있으며, 성인 문화에 비해 미숙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인 문화가 생산적 노동 관습에 순응하고 책임감을 갖는 데 비해, 청소년 문화는 소비에 열중하고 쾌락 추구적이며 기존 가치를 거부하려는 무책임한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은 청소년을 경계에 놓인 존재이자 ‘정상적인’ 문화로 계도해 가야 할 대상이라고 여긴다. 반면 이러한 생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청소년이 그 나름의 원칙과 질서에 따라 사는 독립적인 존재이므로 그들의 문화도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청소년 문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러한 견해 차이는 청소년이 과연 고유한 문화를 가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사회가 받아들일 만한 가치 있는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할 ..

독서/독서이론・언어

언어의 도상성, 지표성, 상징성(2005, 고3, 4월)

언어학자들이 최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언어학의 한 분야 중에 인지언어학이 있다. 인지언어학은 “인간 마음의 본질, 더 나아가서 인간의 본질을 규명하기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언어’, ‘마음과 몸’, ‘문화’의 상관성을 밝히려는 언어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인지언어학에서는 언어의 형식과 의미 사이를 도상성(圖像性), 지표성(指標性), 상징성(象徵性)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먼저, ⓐ도상성은 인지언어학의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기호의 형식과 내용 사이에 사실적 유사성이 존재할 때 드러나게 된다. 예를 들면, ‘패랭이꽃’은 초립동이들이 쓴 모자 ‘패랭이’를 닮은 꽃이므로 그 명칭과 지시물의 관계에 있어서 유사성이 있다. 이 외에, 두 개념이 연합되어 합성될 때, 사람의 선험적 경험이 어순에 반..

독서/사회

현대인의 타자 지향적 삶의 태도(2005, 고3, 4월)

우리 현대인은 대인 관계에 있어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물론 그것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인간의 기본적인 조건인지도 모른다. 어빙 고프만 같은 학자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교제를 할 때, 상대방에 대한 자신의 인상을 관리하려는 속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사람들은 대체로 남 앞에 나설 때에는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는 배우와 같이 행동한다는 것이다. 왜 그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은 주로 대중 문화의 속성에 기인한다. 사실 20세기의 대중 문화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인간형을 탄생시키는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광고는 내가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보일 것인가 하는 점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강조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조바심이나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까지 한다. 그 중에서도 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