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구두」

 

예술 작품을 현실의 모방이나 재현으로 보며 감상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기존의 관점과 달리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예술 작품 자체를 진리가 드러나는 통로로 보았다. 하이데거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존재자로, 그러한 존재자를 존재자답게 만드는 것을 ㉡존재로 규정하고, 예술 작품의 진리는 존재자의 존재가 드러나는 과정을 통해 드러난다고 보았다. 특히 하이데거는 존재자 중 인간이 실용적 목적을 가지고 만든 것을 ‘도구’로 규정했는데, 예술 작품은 단순히 도구를 정확히 모사해서 재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구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예술 작품은 도구의 존재를 드러냄에 따라 존재자의 비은폐성을 이끌어 내어, 존재자의 본질을 열어 보여 주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미학적 관점을 고흐의 「구두」라는 작품을 통해 설명한다. 고흐의 작품 속에서 구두라는 존재자의 존재는, 구두 자체의 외형이나 용도에 의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 구두가 딛고 있는 터전, 그리고 그 구두가 인간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삶 전체에서 드러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는 고흐의 작품 속 구두의 ‘존재’가 그것을 신고 다녔을 어느 농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드러내게 된다고 생각했으며, 구두에 담긴 농부의 고단하면서도 소박하고 경건한 삶 전체가 구두라는 존재자에 은폐되었던 ‘진리’라고 여긴 것이다. 이와 같이 하이데거는 예술 작품 속 도구의 작품 속 구두의 ‘존재’가 그것을 신고 다녔을 어느 농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드러내게 된다고 생각했으며, 구두에 담긴 농부의 고단하면서도 소박하고 경건한 삶 전체가 구두라는 존재자에 은폐되었던 ‘진리’라고 여긴 것이다. 이와 같이 하이데거는 예술 작품 속 도구의 존재가 드러나는 과정을 통해 예술의 본질인 진리가 드러난다고 보았기 때문에, 작품 속 도구가 실제와 얼마나 똑같은지 또는 그것을 예술가가 어떤 의도로 창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미술사학자 샤피로는 하이데거가 아무런 검증 없이 고흐의 작품 속 구두를 농부의 것이라 단정 지은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주변 화가들의 증언에 따르면 고흐는 중고 시장에서 산 구두를 신고 맑은 날이든 궂은 날이든 주변의 언덕을 가로질러 외곽 도로를 누볐고, 그 구두가 완전히 일그러진 다음에 그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고 한다. 따라서 샤피로는 그림 속 구두가 고흐 자신이 신었던 구두를 모델로 삼아 창작된 것이라 보았다. 이처럼 샤피로는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그림 속 구두의 소유주를 찾아 특정 주체에 귀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는 이러한 샤피로의 주장이 예술작품을 대상의 모방으로 보는 기존의 관점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한다. 데리다가 볼 때 하이데거에게 중요했던 것은 구두의 실제 주인이 누구인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구두에 은폐되어 있는 진리를 드러내는 데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데리다는 두 사람의 해석에서 유사성을 읽어 낸다. 두 사람 모두 그림 속 구두를 ‘한 켤레’로 보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림 속. 구두는 오른쪽 것이 훨씬 커 보이기도 할 뿐만 아니라 자세히 볼수록 신고 다닐 수 있는 구두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두 사람은 왜 거기에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을까? 데리다는 두 사람 모두가 구두를 ‘한 켤레’로 규정함으로써, 구두에 대한 그 밖의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보았으며 이것이 문제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처럼 데리다는 예술 작품의 진리는 작품 속에 결코 하나로 나타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고흐의 작품이 하이데거를 만나 하나의 진리를 열어 주듯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진리를 열어 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데리다는 하이데거 처럼 근원적 진리로의 회귀를 원하지 않는다. 데리다는 예술 작품이 열어 주는 다양한 해석들과의 만남 속에서 새로이 세계 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들을 생성해 내는 예술 작품의 끊임없 는 미적 창조력, 바로 거기에 예술 작품의 진리가 놓여 있다고 본 것이다.

 

 

― (출전) 박정자, 「빈센트의 구두」 

@ 2018학년도 7월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 16~20번.



 


재미있는 딸림 문항

20. <보기>를 참고하여 윗글에 나타난 데리다의 예술에 대한 입장을 추론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보 기>
데리다는 언어의 의미가 다른 개념과의 대비, 즉 교차 속에서 생성된다고 생각했다. 한 언어 체계가 큰 숲이고 각각의 단어의 의미가 나무라면, 단어의 의미는 서로 다른 모양의 나무를 비교함으로써 드러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의미 또한 수많은 대안적 의미 속에서 순간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의미의 차이로 인해 언어의 고정 불변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 
① 언어에서 고정 불변한 의미를 찾아내기란 불가능하다고 본 것처럼 예술 작품에 대한 유일한 해석이 어렵다고 보았겠군. (정답)
② 언어의 의미가 다른 개념과의 대비를 통해 생성되듯이 예술 작품도 다른 작품과의 대비를 통해 진리가 드러난다고 보았겠군. 
③ 언어 체계 속에서 단어의 의미가 존재하게 되는 것처럼 예술가들의 관계 속에서 예술 작품의 해석이 가능하다고 보았겠군. 
④ 언어의 의미가 서로 다른 의미의 차이로 인해 드러나는 것처럼 다양한 시각을 통해 예술 작품의 진리는 확정된다고 보았겠군.
⑤ 언어의 의미가 수많은 대안적 의미 속에서 순간적으로 선택된 것처럼 예술 작품의 진리 또한 예술 작품 속에 반영된 다양한 현실을 선택적으로 모사한다고 보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