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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예술(藝術)이라고 할 때 떠오르는 것은 춤, 시, 음악, 건축, 회화, 조각 등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춤, 시, 음악은 ‘엔투시아스모스(enthousiasmos)’로부터, 그리고 건축, 회화, 조각은 ‘테크네(techne)’로부터 비롯된다고 생각하였다. 보통 ‘엔투시아스모스’는 ‘열광’, ‘열정’을 의미하고 ‘테크네’는 ‘기술’, ‘제작’을 의미한다. 엔투시아스모스와 테크네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예술 작품 창작의 기원으로 여겨졌는데, 예술에 대한 관점에 따라서 그 가치에 대한 판단이 달라져 왔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엔투시아스모스는 종교적인 행사에서 사제가 신의 메시지를 얻기 위해 신과 교감하는 열광적인 상태를 의미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상태가 사제뿐만 아니라 종교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난다고 보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몸짓, 언어, 그리고 멜로디와 리듬으로 감정과 충동을 표현하는 활동에 심취하여 사제를 통해 신과 교감하는 상태인 엔투시아스모스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에서 춤, 시, 음악이 ㉠ 나왔다고 생각하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테크네는 신적 존재와 무관한, 인간이 무엇인가를 제작할 때 발휘되는 지적 능력을 의미하였다. 즉 테크네는 정해진 규칙 체계를 준수해 가며 수행되는 의식적인 지적 제작 능력을 지시하는 말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테크네를 발휘해서 나올 수 있는 것이 건축, 회화, 조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건축은 실물을 제작하는 활동이라고 여겼던 반면 회화와 조각은 실물을 모방하는 활동이라고 여겼다. 또 회화와 조각이 실물의 모방이기 때문에 이 모방은 실물의 정확한 이미지의 제작이 될 수도 있지만, 왜곡을 사용한 모방, 즉 환상의 제작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당시 플라톤은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엔투시아스모스와 테크네에 대해서 비판적인 관점을 취했다. 그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적 세계의 이데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능력으로 보았다.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그는 엔투시아스모스를 인간이 ‘이성’으로부터 멀어진 상태로 보았기 때문에 여기에서 비롯된 예술을 인간에게 유해한 것으로 규정하였는데, 특히 ⓐ 시를 강하게 비판했다. 시는 인간에 의한 소산이라기보다는 신과의 교감에 의해서 얻은 메시지에 가까운 것이므로, 인간의 ‘이성’과는 더 멀어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플라톤은 현실 세계의 본질인 이데아에 최상의 가치를 부여하고, 현실 세계는 이 이데아를 모방하여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이데아보다 더 낮은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플라톤은 테크네를 발휘하여 이루어진, 현실 세계에 대한 모방의 결과물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관점을 취했는데 회화와 조각에 대한 비판이 대표적이다. 당시 고대 그리스인들과 마찬가지로 플라톤도 건축은 현실 세계의 실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는 회화나 조각은, 이데아를 모방한 현실 세계를 한 번 더 모방한 대상이므로 현실 세계 그 자체보다도 더 낮은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이 두 번째 모방의 과정에서 왜곡을 통한 환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은 회화와 조각에 대한 플라톤의 비판적 관점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플라톤 이후 예술에 대한 다양한 담론 속에서 엔투시아스모스와 테크네는 다시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특히 근대에 들어와서 엔투시아스모스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 것은 낭만주의였다. 왜냐하면 낭만주의는 예술에서 인간의 합리성을 거부하고 감정의 표현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엔투시아스모스가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신적 존재와 관련되어 강조되었다면, 낭만주의 시대에는 인간 자신의 상상력, 무의식 등과 관련되어 강조되었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와서 테크네의 가치는 사실주의에 의해서 부각된다. 사실주의는 현실 세계의 정확한 모방을 추구했기 때문에 환상의 제작이라는 측면을 제외한 테크네, 즉 정확한 이미지의 제작을 가능하게 하는 테크네의 가치를 중시하였다.

 

* 이데아: 인간이 감각하는 현실적 사물의 원형(原形). 모든 존재와 인식의 근거가 되는 초월적인 실재로서 사물의 영원하고 불변하는 본질적인 원형.

 


― 출전: 오병남, 「미술론 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