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은 최선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이 세계에 있는 모든 대상들이 지닌 성질을 정확하게 인식해야만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대상은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신도 마음대로 어쩌지 못하는, 그 자신만의 고유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이성은 그 대상을 인식하기 위하여, 우선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을 오려 내어 하나의 고정치로 확정지어야 한다. 대상의 바로 이런 고정화된 모습을 플라톤은 이데아(idea)라 부른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초기 작품에서는 ‘개별적 사물의 공통된 모습’으로, 원숙기의 작품에서는 ‘진정한 존재, 영원불변한 어떤 실체’로 규정된다. ‘개별적 사물의 공통된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는 인간이 무엇인가를 규정하기 위하여 학생․농부․사업가․정치가 등과 같은 특정의 사람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사람들 모두에 공통적인, 즉 일반적인 인간에 대해서 살펴보게 된다. 따라서 ‘개별적 사물의 공통된 모습’으로서의 이데아에 대한 규정은 보편자 개념을 통한 규정이고, 그러한 규정은 대상을 단순히 감각적 차원에서 한 번만 경험하고 흘려보내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이성적 차원에서 ㉡개념 체계의 좌표를 통해 파악하고 정리해 두려는 학문적 인식의 출발점이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의미에서의 이데아, 즉 한 사물의 보편적 성질만 알면 그 사물에 대해 완전하게 인식하게 되는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개별적 사물에 대해 완전히 알기 위해서는 그 사물의 이데아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사물만이 고유하게 갖고 있는 개별적 특수성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사실 플라톤의 초기 작품에 나오는 이데아에 대한 앎은 한 사물의 본질에 대한 학문적 차원에서의 앎은 제공해 줄 수 있어도, 그것의 고유성까지 꿰뚫는 완벽한 앎은 제공해 주지 못한다. 그래서 플라톤은 그의 원숙기에 속하는 작품에서부터 개별자와 연관을 맺고 있는 이데아에 대해 주로 고찰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새로운 차원의 이데아론은 이데아와 현상계에 대한 비유적 표현 때문에 철학사적으로 가장 심각한 오해를 받아 왔다.


사실 이데아는 영원불변한 실체이고, 현상계의 개체는 그것의 그림자라는 비유적 표현은 일반인들에게는 잘못 이해될 수 있는 소지를 충분히 안고 있다. 인식론적 관점에서 볼 때, 이데아를 안다는 것은 하나의 대상을 학문적 인식 체계 속에서 그 대상이 속해 있는 유개념을 파악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데아의 그림자인 개별자를 안다 함은 이데아라는 보편적 성질과 함께하고 있는 개별자 자체의 고유한 특성에 대한 앎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이데아론에는 보편자에 대한 개념적 파악과 개별적 특수성에 대한 내용적 파악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이중적 시선이 작용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야만, 우리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학문적 인식 체계에서 차지하는 진정한 의의를 알 수 있게 된다. 


― 박희영, '철학적 세계로의 입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