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의 남자> 중에서


한국의 줄타기는 줄광대와 어릿광대, 악공, 관중이 서로 어울려 삶의 애환과 신명을 공유하면서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종합예술이다. 줄타기는 기예, 재담, 노래 등을 연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극적 상황에 따라 관중이 참여하기도 한다.


줄광대는 줄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기예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줄 아래 지상의 어릿광대나 악공, 관중과도 재담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연행 방식은 줄광대가 올라서 있는 줄이라는 수평적 공간에서부터 관중이 위치한 공간으로까지 극적 공간을 수직적으로 확대시킨다는 측면에서 입체적이다.


줄타기는 긴장과 이완의 반복 구조를 지닌다. 일반적으로 줄타기는 전체적으로 ‘줄고사 - 기예Ⅰ- 놀이 - 기예Ⅱ- 마무리’ 등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먼저 참가자 모두의 행복을 기원하는 줄고사로 연희의 시작을 알린 후 기예Ⅰ이 연행된다. 줄 위에서 줄광대가 아슬아슬한 묘기를 선보이면 관중의 긴장감은 점차 고조된다. 기예Ⅰ에서 조성된 긴장은 이어 전개되는 재담과 노래 중심의 놀이를 통해 이완된다. 파계승을 풍자하는 ‘중놀이’와 다양한 계층을 희화화하는 ‘왈짜놀이’ 등의 놀이가 극적 흥미를 제공하면서 기예Ⅰ에서 조성된 긴장을 이완시키는 것이다. 고난도 묘기들로 구성된 기예Ⅱ가 펼쳐지면 관중의 긴장은 더욱 고조된다. 정점에 달한 긴장이 마무리 과정에서 점차 이완되면서 전체 연행은 끝을 맺게 된다. 이와 같이 줄타기는 각 과정별로 긴장과 이완이 반복됨으로써 관중의 극적 몰입도를 높여 흥미를 배가시킨다.


한편, 줄타기 전체에 걸친 긴장과 이완의 반복 구조는 줄타기의 각 부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 기예Ⅱ는 외발만 딛고 뛰며 걷는 ‘앵금뛰기’, 두 다리를 붙이고 거꾸로 서는 ‘배 돛대 서기’ 등의 절묘한 기술들로 이루어져 있다. 기술과 기술 사이에는 재담뿐만 아니라 인물의 외양과 행동에 대한 의도적 왜곡과 모방 등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고난도의 연행으로 인해 조성된 긴장감이 시청각을 자극하는 흥미 요소들을 통해 이완되는 것이다.


이렇듯 줄타기는 민중의 삶과 신명을 긴장과 이완의 반복 구조를 통해 현장감 있게 풀어낸다.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형태는 자연의 섭리인 동시에 삶의 굴곡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줄타기는 보다 근원적인 예술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 이호승, 「한국 줄타기의 역사와 연행 양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