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기 예술가들은 일반적으로 감상자의 시선을 그림의 정면에 상정하여 사물을 표현하였다. 그래서 감상자가 그림을 매우 비스듬한 각도에서 보면 사물이 왜곡되어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감상자의 위치를 적절히 고정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당대의 이론가였던 프란체스카는 감상자들의 시야가 그림의 정면에서 90도 각도 이내여야 한다고 하기도 하였다. 바로크 시기에 이르러 예술가들은 이러한 왜곡 현상을 바로잡아야 할 장애로 받아들이지 않고 아나모르포시스(anamorphosis)라는 독립된 회화 기법으로 발달시켰다.


아나모르포시스, 즉 왜상은 사물의 형상을 극도로 왜곡하여 표현한 것이어서 정면에서 보게 되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기 어렵다. 왜상의 종류에는 사각왜상과 반사왜상이 있다. 감상자가 특정한 지점에서 화면을 보았을 때 왜상이 바른 형상으로 보인다면, 그 지점은 화면을 기준으로 항상 사각(斜角)에 위치하기 때문에 이러한 왜상을 사각왜상이라고 한다. 또한 왜상의 주변에 원통형 거울을 놓았을 때 거울의 반사를 통해 형태가 제대로 보이는 왜상은 반사왜상에 해당한다. 


그림을 정면에서 보는 방식에 익숙한 감상자는 왜상을 처음 보면 사물이 아닌 일종의 ‘얼룩’으로 지각하고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위치를 이리저리 바꾸어 보거나 거울을 놓아보게 되면 이 얼룩은 의미를 가진 형상으로 탈바꿈한다. 즉 감상자의 위치 혹은 감상자의 행위가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킬 때 비로소 화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본래 이미지가 나타나는 것이다. 화가가 왜상의 형태로 감추어 놓은 이미지는 감상자의 참여 없이는 드러나지 않는 것이어서, 감상자는 화가의 숨겨진 생각을 파악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림의 감상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래서 니세론이라는 학자는, 왜상은 일상적인 감상법으로 보면 혼돈으로 여겨지지만 올바른 시점을 찾아내는 감상자는 숨겨진 진실을 알아볼 수 있다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아나모르포시스는 그 독특한 모습 때문에 지금까지 서양 미술사에서 특정한 사람들의 여흥거리로만 여겨져 오기도 했다. 또한 ㉠특히 사각왜상의 경우 감상법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앞서 설명한 르네상스 시기의 회화를 감상하는 방법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면이라는 고정된 위치에서 그림을 수동적으로 보기만 해왔던 감상자가 왜상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상을 바르게 보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화가의 의도와 주제를 찾아내는 존재가 된다는 점에서 왜상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 조은정, 『아나모르포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