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서 공간이란 건축의 실체로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하나의 공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물리적 구획이 필요한데 이때 구획을 결정짓는 것은 벽체-바닥-천장이라는 3차원 구도를 구성하는 경계요소이다. 1900년대 중반까지 대부분의 서양 건물은 경계요소에 의해 내·외부 공간이 엄격하게 차폐되는 형태를 보였다. 공간은 일률적으로 구획되었으며 물리적 구조체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공간은 기능을 위한 도구로서 의미를 가졌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은 1909년 비엔나에 지어진 ‘로스하우스’이다. 이 건물은 지붕과 본체, 기단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사각의 단순한 외형으로 지어졌다. 주거를 위해 계획된 이 건물은 한 치의 낭비도 없는 가지런한 공간 구성을 하고 있다. 건물의 내부는 박스형 공간 구성을 하고 있으며 일체의 장식은 배제되었다. 건물의 외부는 내부 공간에서 필요로 하는 기능적 창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 건물은 기능주의 건축의 표본이 되었다. 


로스하우스 ⓒ https://brunch.co.kr/@kkan/17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서양 건축의 공간에 대한 인식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기능과 효율 중심의 근대적 가치관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일군의 건축가들은 공간을 특정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닌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가변적 대상으로 보았다. 또한 공간이 체험자에 따라 다르게 인식되는 상대성으로 말미암아 예술적이고 감성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여겼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간 구성의 제약을 벗어난 비정형적 형태의 건물이 지어졌다. 외부 공간과 내부 공간을 연속되게 하거나 건물 내에 광장이나 공원을 만드는 시도 등이 다양하게 이루어지기도 했다.


신시내티의 ‘로젠탈 현대미술센터’는 기능주의 건축의 공간 인식을 탈피한 대표적 건물로 꼽을 수 있다. 이 건물은 거리의 영역을 연장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도시의 카펫’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하다. 전면이 유리로 처리된 건물의 로비는 외부의 보행로와 연결되어 통로이자 전시실이 되고 공원이자 광장으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또한 건물 곳곳의 작고 조밀한 공간들은 크기나 비례가 서로 다르게 구성되어 있고 거리감 역시 다르게 주어져 있다. 공간 체험자가 공간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로젠탈현대미술센터


공간은 사람들의 신념이나 의식이 담겨 물리적 형태로 구현된 것이다. 기능주의 건축이 효율 지향의 근대적 가치관을 드러낸다면, 이를 탈피하려는 움직임으로서의 건축 경향은 조화와 예술의 시각에서 현대 문명을 이해하고자 하는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임석재, 『미니멀리즘과 상대주의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