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 과학 영화 속의 사이보그를 보면, 인간과 똑같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인간이 하듯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렇다면 그들을 인간이라고 보아도 되는 것인가? 과연 인간을 인간이 아닌 것, 즉 비인간과 구분 지을 수 있는 고유의 인간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인가?


17세기 데카르트는 동물과 인간의 몸은 유사하지만, 동물과 달리 인간에게는 영혼이 존재하며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렇게 정신과 육체를 분리함으로써 동물과 인간을 구분 지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은 자유롭고 주체적인 의식을 지닌 유일한 존재로서 그 우월적 지위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19세기 유물론이나 진화론 등이 대두되면서 흔들리기도 했지만, 실제 삶 속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의 우월성을 크게 위협할 수 있는 상황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20세기 이후 고유의 인간성을 인정했던 관점은 과학 기술의 비약적 발전에 따라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기계 장치의 이식이나 유전자 변이에 의해 강화된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새로운 존재, 소위 ‘포스트휴먼’이 등장하면서 고유의 인간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인공팔과 인공망막 등이 신체에 이식되고 있으며, 앞으로 인공 지능의 개발로 생각할 수 있는 컴퓨터가 등장하고, 더 나아가 기계 인간인 사이보그가 등장하리라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이제 인간은 자신의 영역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있는 포스트휴먼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을 맞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인간이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기계를 만들었지만, 이제 인간은 자신이 만든 기계 환경에 맞추어 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기계는 이제 더 이상 인간의 도구로서만 존재하지 않고, 인간의 의식에 관여하고, 더 나아가 인간의 삶의 방식 자체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렇게 된다면 기계에 대한 인간의 배타적 우월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포스트휴먼의 등장은 그동안 고유의 인간성을 인정해 왔던 관점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성찰이 인간의 배타적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을 인간이 아닌 것과 구분하는 또 다른 기준을 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되어서는 안 된다. 포스트휴먼에 관한 논의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구분해 왔던 관점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재고를 요구하고 있다.


― 신상규 외, 『인간과 포스트휴머니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