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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음악이 좋은 것이고 어떤 음악이 나쁜 것일까?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음악학자인 에게브레히트는 음악을 판단하거나 평가할 때 감성적 판단과 인식적 판단이라는 두 가지 척도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는 감성적 판단이 ‘좋다’, ‘나쁘다’ 등과 같은 감성적 차원의 언어를 통해 표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인식적 판단은 감성적 판단에 대한 근거를 설명하는 것으로, 감성적 판단을 이론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에게브레히트는 음악을 들을 때 감성적인 판단과 인식적인 판단의 비중은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인식적 판단은 문외한에게는 거의 활용되지 않지만 어느 정도 훈련이 된 경우에는 인식적 판단과 감성적 판단이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인식적 판단보다 감성적 판단이 근본적인 우위를 차지한다고 보았다. 


음악을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것과 관련하여 에게브레히트가 감성적 판단과 인식적 판단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 반면, 달하우스는 주관과 객관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미적 판단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어서 객관적 검증이 필요 없다는 통설적 미학의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러한 견해를 지닌 사람들은 다수가 취한 쪽을, 즉 집단에 의한 판단을 몰개성적으로 따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달하우스는 음악을 판단하거나 평가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주관적 판단이 집단에 의한 판단에서 비롯한다고 보았다. 예컨대, 비발디의 ‘사계’가 좋은 음악이라고 평하는 사람에게는 비발디의 ‘사계’에 대한 그 사회의 집단적 호감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주관적 판단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되, ‘집단에 의한 판단에 기초하면서도 그 판단을 몰개성적으로 따르지는 않는 주관적 판단’을 추구하였는데, 이는 집단에 의한 판단을 고려하면서도 이를 개성화된 반응이 가능할 정도로 확대시키는 것이다. 달하우스는 이러한 판단이야말로 미적 대상에 대한 올바른 미적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그는 객관적 판단의 필요성을 옹호하였는데, 객관적 판단은 단순히 주관의 배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 판단을 검증하고 검토하는 도구로서 기능한다고 보았다. 그는 음악에 대한 미적 평가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려면 최소한의 사실 판단에 기초해야 한다고 보았다. 음악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가 어디까지나 작품 자체에 대한 면밀한 분석에 근거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 오희숙 외, ‘좋은 음악과 나쁜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