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한 장면.


일반적으로 영화는 구체적인 대상을 재현하는 데에는 그 어떤 예술보다 강하지만, 대사나 자막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정신 적인 의미를 표현하는 데 약하다. 그런데 영화의 출발이 시각 예술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언어적 요소에 의존하는 것은 영화 본연의 방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영화가 독자적인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순수하게 시각적인 방식으로 추상적인 의미 표현에 이를 수 있어야 한다.


에이젠슈테인은 여기서 한자의 구성 원리에 주목한다. 한자의 육서(六書) 중 그가 주목한 것은 상형 문자와 회의 문자다. 상형 문자는 사물의 형태를 본뜬 문자다. 그러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형태를 본떠서 재현할 수 있지만,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은 재현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휴식’과 같이 추상적인 개념은 상형 문자로 표현할 수 없다. 이때 이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회의 문자다. 회의 문자 ‘쉴 휴(休)’는 ‘사람 인(人)’과 ‘나무 목(木)’이 결합된 문자다. 이 두 문자를 결합하면 ‘휴식’ 이라는 추상적 의미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휴식’이란 말의 의미는 ‘人’에도 ‘木’에도 들어 있지 않다. 두 개의 문자가 결합 되면서 두 문자의 단순한 총합이 아닌 새로운 차원이 열리며, 이를 통해 추상적인 의미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에이 젠슈테인이 회의 문자에서 주목한 지점이다.


이러한 원리가 영화의 시각적인 의미 표현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의 문자를 이루는 요소들이 상형 문자라는 점이다. 묘사적이고 단일하며 가치중립적인 상형 문자의 특성은 영화의 개별 장면(shot)들의 특성에 상응한 다. 회의 문자를 이루는 각각의 문자는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사물이나 사실에 대응되지만, 그 조합은 개념에 대응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ᄂ 영화의 개별 장면들은 사물이나 사실에 대응되지만, 이들을 특정하게 결합시키면 그 조합은 개념에 대응된다. 따라서 회의 문자의 구성 원리를 이용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묘사할 수 없는 것, 추상적인 것을 순수하게 시각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개별 장면들의 시간적 병치를 통해서 이루어 낸 추상적 의미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한다. 따라서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면서 거기에 담긴 의미를 구성해 내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