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사회 진화론은 다윈의 생물 진화론을 개인과 집단에 적용시킨 사회 이론이다. 사회 진화론의 중심 개념은 19세기에 등장한 ‘생존 경쟁’과 ‘적자생존’인데, 이 두 개념의 적용 범위가 개인인가 집단인가에 따라 자유방임주의와 결합하기도 하고 민족주의나 제국주의와 결합하기도 하였다.


1860년대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 진화론자인 ㉠스펜서는 인간 사회의 생활은 개인 간의 ‘생존 경쟁’이며, 그 경쟁은 ‘적자생존’에 의해 지배된다고 주장하였다. 스펜서는 가난한 자는 자연적으로 ‘도태된 자’이므로 인위적인 도움을 주어서는 안 되고, 빈부 격차는 사회 진화의 과정에서 불가피하다고 인식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자본주의가 확장되던 영국과 미국에서 자유 경쟁과 약육강식의 현실을 정당화하고, 개인주의적 정서를 강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19세기 말 ㉡키드, 피어슨 등은 인종이나 민족, 국가 등의 집단 단위로 ‘생존 경쟁’과 ‘적자생존’을 적용하여 우월한 집단이 열등한 집단을 지배하는 것은 자연법칙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인종 차별이나 제국주의를 정당화하였다. 우생학과 결합한 사회 진화론은 앵글로ㆍ색슨 족이나 아리아 족의 문화적ㆍ생물학적 우월성에 대한 믿음을 지지함으로써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식민주의적, 인종주의적 정책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되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19세기 말 ㉢문명 개화론자들이 사회 진화론을 수용하였다. 이들은 ‘생존 경쟁’과 ‘적자생존’을 국가와 민족 단위에 적용하여 ‘약육강식’ㆍ‘우승열패’의 논리를 바탕으로 서구식 근대 문명국가 건설과 군국주의를 역설하였다. 나아가 세계적인 대세에 잘 적응한 일본이 경쟁에서 뒤처진 조선을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는 주장을 전개했는데, 이는 나중에 식민사관으로 이어졌다.


사회 진화론은 구한말 개화파 지식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윤치호 같은 일부 개화파는 강자에 의한 패배를 불가피한 숙명으로 인식함으로써 조선 망국의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박은식, 신채호 등 민족주의자들은 같은 사회 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도 조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본이나 서구 열강과의 경쟁에서 반드시 승자가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키워야 한다는 자강론의 근거로 삼았다.


― 강준만, ‘국가 경쟁력, 한국적 사회 진화론 다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