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클레, '선택된 장소' (AUSERWHLTE STATTE 1927년 厚紙, 종이 수채,펜 46x30.5cm. 뮌헨 개인 소장)


예술에서 변형적 사고는 종종 새로운 발견을 이끌어 내어 창조적인 작품을 탄생시킨다. 특히 음악과 미술의 상호변환 가능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언급해 왔는데, 음악을 이미지로 변형시킨 대표적인 화가로 파울 클레를 들 수 있다.


클레는 음악을 듣는 청중처럼 관람객들이 부분과 전체를 동시에 지각할 수 있는 시각적 형태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클레는 바우하우스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자신의 실험과정을 공책에 기록했다. 그는 처음에는 음표를 간단한 그래프 모양으로 표시했다. 이는 음의 강도와 지속시간을 보여주었다. 그런 다음 한 단계 더 추상화시켜서 음표를 음들의 연속에 따른 선형 이미지로 만들어냈다. 이 단계까지는 실제로 ㉠표시하지는 않았지만 음자리표가 있는 것으로 상정되어 있는 만큼 연주악보로서의 기능을 아직 ㉡보유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표는 음의 지시기호가 아닌 이미지의 성격이 더 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 단계에서 클레는 선형 음표를 다시 순수한 선으로 추상화했는데, 이때에 이르면 음악악보와 관련된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게 된다. 



클레는 작곡가들이 다성음악*을 창작하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작품의 시각적 요소들을 ‘혼합’해서 복잡한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작품 <5성부 다성음악>에서 그는 각기 다른 다섯 종류의 선을 그렸다. 이는 다섯 개의 ‘성부(聲部)’를 나타낸다. 이 선들은 각자 가진 고유한 특질을 훼손하지 않은 상태로 서로 가로지르며 일정한 패턴을 형성한다. 우리는 패턴 전체를 ㉣조망하면서 동시에 각 부분도 볼 수 있다. 


클레의 음악 이미지 변형 기법에서 특히 놀라운 것은 이 이미지가 원래 음악에서 발견할 수 없는 새로운 특성을 획득하게 된 점이다. 음악은 오로지 시간을 따라 한 방향으로 가면서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각적인 다성음악은 어떤 방향에서든, 또는 방향들의 조합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그럼으로써 음악에는 존재하지 않는 관계성이 만들어진다. 어떤 정서나 생각, 자료를 변형하는 일은 결코 동일해질 수 없기 때문에 변형과정은 클레의 경우처럼 ㉤예기치 않은 발견을 낳을 수 있다. 그 결과 변형적 사고는 숱한 창조적 인물들이 의식적으로 채택하는 전략이 되고 있다. 


* 다성음악 : 독립된 선율을 가지는 둘 이상의 성부로 이루어진 음악. 


―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생각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