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의 중앙 부분.


‘도상학(Ikonographie)’이라는 말은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단어로, ‘그림’이라는 뜻의 ‘ikon’과 ‘묘사’라는 뜻의 ‘graphein’의 합성어이며,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그림 묘사’가 된다. 도상학은 작품이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를 밝히는 분석 방법으로, 그림이 그려진 당시의 사회ㆍ경제ㆍ역사적 상황에 의해 규정되는 특성을 중시한다.


도상학적 해석 방식을 체계적으로 만든 사람은 어빈 파노프스키라는 독일의 미술사가다. 그가 체계화한 도상학은 세 단계로 ⓐ나뉜다.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그림 <금의 무게를 다는 여인>에 이를 적용해 보자.


요하네스 베르메르, <금의 무게를 다는 여인>

 

파노프스키가 말하는 도상학의 첫 번째 단계에서는 ㉠그림 속에 보이는 것을 묘사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보이는 인물의 포즈, 사물이 배치된 상황, 색채와 빛의 방향까지 상세히 묘사하는 것이다. <금의 무게를 다는 여인>을 보면, 부드러운 빛이 창으로 흘러들어온다. 양탄자로 반쯤 ⓑ덮인 책상 위에 보석함이 있다. 보석함 안에, 그리고 책상 위에는 보석들이 ⓒ놓여 있다. 그 앞에 서 있는 여인은 오른손으로 저울을 들고 있다. 창문 쪽에는 거울인 듯한 물건이, 여인의 등 뒤로는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그림에 그려진 내용을 도상적 전통과 관례를 통해 파악한다. 즉, 소재로 ⓓ쓰인 대상이 신화나 역사 속의 특정 인물은 아닌지, 또 미술의 역사상 관습적으로 그려져 온 어떤 장면과 연관되지는 않는지를 밝힌다. 이 단계에서는 ㉡회화에서 관습적으로 쓰여 온 제재에 대한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한 무리의 인물들이 특징적인 배열과 자세로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모습이 담긴 그림을 보고, 그것이 최후의 만찬을 그린 것임을 알아내는 일이 이에 해당한다. 다시 베르메르의 그림으로 돌아가 보자. 여인의 뒤쪽에 걸려 있는 그림의 제재는, 서양 미술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최후의 심판’이다.


그렇다면 <금의 무게를 다는 여인>과 <최후의 심판>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물음을 통해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는데, 이 단계의 과제는 그림에 숨겨진 의미를 밝혀내는 것이다. 여인이 든 저울과 최후의 심판 사이의 연관을 고려한다면, 이 작품의 메시지는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기억하라는 화가의 종교적, 도덕적 경고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주목해야 할 것은 책상 위의 보석들인데, 이것들은 속세의 부를 상징한다. 서양 미술의 전통에서 16세기 이래로 보석과 거울은 삶의 허무함의 상징 중 하나였다. 여인이 들고 있는 텅 빈 저울, 테이블 위의 보석, 그리고 벽에 걸린 거울은 모두 인생의 무상함을 상징한다. 이렇게 이 그림은 “속세의 물질적 욕심에 눈을 돌리지 말고 네 영혼이 신의 저울에 올려질, 마지막 심판 날이 올 것을 기억하라.”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베르메르는 금의 무게를 다는 저 여인을 통해서 신의 정의와 인간의 삶의 무상함을 ⓔ보이려 했던 것이다.


― 조이한ㆍ진중권, ‘천천히 그림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