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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무용총의 「수렵도」에는, 모필(毛筆, 붓)의 특징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는 선묘(線描)*를 볼 수 있다. 특히 휘영청 휘어지는 물결 모양의 산악 표출이나 달리는 짐승과 이를 쫒는 기마상에 가해진 극히 요약된 선조(線彫)*의 리듬은 모필의 운동감이 아니고는 획득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때로는 굵게 때로는 가늘게 나타나는 변화 있는 두께와 유연한 리듬의 선조는 이 모필이 갖는 독특한 매재(媒材)*적 성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모필은 붓을 말한다. 이 붓은 종이, 먹과 함께 문인들이 인격화해 불렀던 문방사우(文房四友)에 속하는데, 문인들은 이것을 품성과 진리를 탐구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벗으로 여기고 이것들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그려진 그림을 동양에서는 문인화(文人畵)라 불렀으며 이 방면에 뛰어난 면모를 보인 이들을 문인화가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문인들은 화공(畵工)과는 달리 그림을, 심성을 기르고 심의(心意)와 감흥을 표현하는 교양적 매체로 보고, 전문적이고 정교한 기법이나 기교에 바탕을 둔 장식적인 채색풍을 의식적으로 멀리했다. 또한 시나 서예와의 관계를 중시하여 시서화일치(詩書畵一致)의 경지를 지향하고, 대상물의 정신, 그리고 고매한 인품을 지닌 작가의 내면을 구현하는 것이 그림이라고 보았다. 이런 의미에서 모필로 대표되는 지․필․묵(紙․筆․墨, 종이․붓․먹)은 문인들이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알맞은 매재가 되면서 동양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 명나라 말기의 대표적 문인인 동기창(董其昌)은 정통적인 ㉡화공들의 그림보다 문인사대부들이 그린 그림을 더 높이 평가했다. 동양에서 전문적인 화공의 그림과 문인사대부들의 그림이 대립되는 양상을 형성한 것은 이에서 비롯되는데, 이처럼 두 개의 회화적 전통이 성립된 곳은 오로지 극동 문화권뿐이다. 전문 화가들의 그림보다 아마추어격인 문인사대부들의 그림을 더 높이 사는 이러한 풍조야말로 동양 특유의 문화현상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다.


동양에서 지․필․묵은 단순한 그림의 매재라는 좁은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동양의 문화를 대표한다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지․필․묵이 단순한 도구나 재료의 의미를 벗어나 그것을 통해 파생되는 모든 문화적 현상 자체를 대표하는 것이다. 나아가 수학(修學)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지․필․묵이 점차 자신의 생각과 예술을 담아내는 매재로 발전하면서 이미 그것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사유 매체로서 기능을 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종이와 붓과 먹을 통해 사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 선묘: 선(線)으로만 그림. 또는 그런 그림.

* 선조: 가는 선으로 쌓아 올리거나 선을 파 들어가는 조각법.

* 매재: 매개가 되는 재료.


― 오광수, 「한국 현대미술의 미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