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생김새를 통해 보이지 않는 소리를 기술적으로 배려한 건축 음향 설계'가 반영된 창덕궁 인정전.


그리스 시대에 만들어진 반원형의 야외극장에서는 지금도 무대 위의 소리가 아주 명확하고 깨끗하게 들린다. 그렇게 넓은 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마이크도 없이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을까? 또한 콘서트홀에서 듣는 음악이 웅장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간의 생김새를 통해 보이지 않는 소리를 기술적으로 배려한 건축 음향 설계에서 그 단서를 알 수 있다.


소리는 물체에 닿으면 일부는 흡수되거나 뒤쪽으로 투과되며 반사된다. 이때 반사되지 않고 부딪힌 물체에 흡수되는 것을 흡음이라 하고, 다른 물체가 가로막고 있어도 진행 방향이 변경되어 뒤로 전달되는 것을 회절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 야외극장의 비밀은, 음이 흡수되지 않고 반사되는 경사진 돌바닥과 계단형 바닥에 숨겨진 항아리에 있었다. 항아리는 일종의 공명상자로 무대에서 떨어진 거리에 따라 다른 크기로 묻혀 있었는데 무대에서 멀어질수록 더 큰 항아리가 매설되어 있었다. 고주파수는 파장이 짧고, 저주파수의 경우 회절이 잘되며 파장이 길고 전달 거리가 더 멀다. 좌석 밑의 항아리는 저주파수음의 공명을 만들어 거리에 따른 음의 감쇠를 보완하기 위한 기술적 장치이다.


<그림 1> 여러 표면의 음파의 반사, <그림 2> 콘서트홀의 단면구조도


반사면을 만나면 소리는 빛처럼 반사된다. <그림 1>은 다양한 반사각에 따른 소리의 방향을 표시한 것이다. A는 반사각이 달라 음이 여러 방향으로 퍼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천장이 ⓐ고르지 않은 경우 ‘확산 반사’가 일어나 소리의 퍼짐 효과가 좋다. B처럼 천장과 바닥을 평행하게 만들면 소리가 ‘반복 반사’하면서 울리는 ‘플러터 에코’가 발생한다. 이는 소리가 명료하게 들리는 것을 방해한다. C와 같이 오목한 돔 모양으로 천장을 처리하면 반사음이 한 곳으로 모이는 ‘집점 반사’가 발생하는데, 음이 모이는 곳 외에는 잘 들리지 않게 된다. 따라서 좋은 소리를 효과적으로 들으려면 <그림 2>처럼 다양한 형태의 반사각을 만들어 풍부한 반사음을 유도해야 한다. 


실내에서는 음원이 멎은 뒤에도 울림이 남아 있는데, 이를 잔향이라고 한다. 실내에 소리를 흡수하는 흡음재가 적을수록, 울림을 형성하는 공간이 클수록, 잔향 시간은 길어져 쿵쿵 울린다. 고주파의 경우 벽, 바닥, 천장에 부딪히면 쉽게 에너지가 손실되어 잔향 시간이 짧은 반면, 음 에너지가 강한 저주파수는 잔향 시간이 길게 나타난다. 잔향은 반사음에 의해 생긴 현상으로 풍부한 울림을 주므로 음악 연주 시는 긴 것이 바람직하지만, 강연의 경우에는 잔향 시간이 너무 길면 명료도가 떨어진다. 이를 적절한 수위로 조절하려면 벽면이나 의자의 재질을 음의 흡수가 잘되는 것으로 마감한다.


결국 건축 음향 설계 기술은 공간의 목적에 따른 공간의 형태 설계와 잔향 설계로 구분되는데 이때 건축물의 모양, 흡음재의 배치, 음원과의 거리 등이 중요한 요소로 고려된다.


― 김재수, '건축 음향 설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