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회와 더불어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기술은 산업혁명 이후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에 따라 기술의 영향력은 날로 증대되어 오늘날 우리는 그 누구도 기술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기술의 발전은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를 진보시키는 데 긍정적인 영향만을 미치는가? 그렇지는 않다. 기술의 발전은 인간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을 동시에 미친다. 이러한 이유로 기술에 대한 사회적 통제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부응하여 등장한 국가 기술 정책의 수단이 기술 영향 평가(technology assessment)이다. 기술 영향 평가는 전문가와 이해 당사자 및 일반 시민들이 특정한 기술의 사회적 영향을 평가한 다음, 긍정적 영향은 극대화하고 부정적 영향은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기술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통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초창기의 기술 영향 평가는 이미 개발된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사후에 평가하고 처방하는 데 주력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후적 평가와 처방은 기술에 대한 ‘통제의 딜레마’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통제의 딜레마란, 비록 기술 영향 평가를 통해 어떤 기술이 문제가 많다고 판단될지라도, 그 기술의 개발이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 있는 상태라면 그것을 중단시키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이 딜레마는 기술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어렵게 만든다. 결국 통제의 딜레마로 인해 사후적 기술 영향 평가는 기술을 통제하고자 했던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이 딜레마를 극복하고자 기술 개발의 전 과정에 대한 지속적인 평가를 통해 기술 변화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루어지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사전적이고 과정적인 기술 영향 평가가 새롭게 등장하였다. 기술이 일방적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도 기술 변화의 내용이나 속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기술사회학적 인식이 그 배경이 되었다. 이 새로운 기술 영향 평가는 기술 개발의 과정에 초점을 둠으로써 기술 통제의 측면에서 전통적인 기술 영향 평가에 비해 좀 더 성공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면 이 새로운 기술 영향 평가는 통제의 딜레마를 완전히 해결했는가? 이 질문에 아주 긍정적으로 답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기술 발전의 방향은 불확실성이 많아 사전적이고 과정적인 평가조차도 기술의 영향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설혹 잘 예측하여 기술 통제를 위해 적절한 기술 정책을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그 정책이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영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기술들에 대한 평가와 통제의 필요성을 감안한다면 이 기술 영향 평가는 현재로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기술 정책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 ‘기술 영향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