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의 핵심 업무는 여유 자금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예금을 ⓐ유치해 자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대출하는 일이다. 은행은 이 과정에서 대출과 예금의 금리 차이를 통해 수익을 얻으며, 국민 경제 차원에서 자금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사회적 역할도 수행한다. 그러나 고객 관련 정보 부족으로 인해 이 역할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 고객의 상환 능력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출금을 회수하지 못할 위험에 늘 노출되는 것이다.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은행은 확실한 담보가 있거나 신용 등급이 높은 사람들만 상대하는 전략을 채택한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매우 높은 금리에도 불구하고 사금융을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금융의 사회적 역할, 나아가 금융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관점에서 보자면, 금융은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최소한의 이용이 보장되어야 하는 보편적 권리의 대상이자,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영향력을 발휘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물론 그것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경제 관념이 ⓑ희박하고 소득 창출 능력 또한 ⓒ떨어지므로 대출금을 회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 배제층에게 소액의 창업 자금을 무담보로 대출해 주면서도 은행을 무색케 할 정도로 높은 성과를 ⓓ거두는 사례도 있다. 빈곤층의 자활을 지향하는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가 그것이다. 


세계적인 마이크로크레디트 단체인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은 융자를 희망하는 최저 빈곤층 여성들을 대상으로 ㉠공동 대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다섯 명이 자발적으로 짝을 지어 대출을 신청하도록 해, 먼저 두 명에게 창업 자금을 제공한 후 이들이 매주 단위로 이루어지는 분할 상환 약속을 지키면 그 다음 두 사람에게 돈을 빌려 주고, 이들이 모두 상환에 성공하면 마지막 사람에게 대출을 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들이 소액의 대출금을 모두 갚으면 다음에는 더 많은 금액을 대출해 준다. 이런 방법으로 ‘그라민은행’은 99%의 높은 상환율을 달성할 수 있었고, 장기 융자 대상자 중 42%가 빈곤선에서 벗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크레디트는 아무리 작은 사업이라도 자기 사업을 ⓔ벌일 인적․물적 자본의 확보가 자활의 핵심 요건이라고 본다. 한국에서 이러한 활동을 펼치는 ‘사회연대은행’이 대출뿐 아니라 사업에 필요한 지식과 경영상의 조언을 제공하는 데 주력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이들 단체의 실험은 금융 공공성이라는 가치가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의 행동과 성과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유효한 수단을 확보하는 일이 관건임을 입증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금융의 사회적 역할 - 마이크로크레디트의 사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