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1586-1647). 조선 중기의 문신

 

 

병자호란 당시 청이 조선에 제시한 강화 조건은 조선이 ⓒ 고수해 왔던 명에 대한 의리, 곧 대명의리를 부정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에 ㉠ 척화론자들은 대명의리를 지켜야 하므로 청과의 화친은 불가하다고 하였다. 당대인들은 조선과 명을 군신(君臣)이자 부자(父子)의 의리가 있는 관계로 보았고, 특히 임진왜란 때 명의 지원을 받은 후 대명의리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보편적 규범으로 인식되었다. 척화론자들은 불의로 보존된 나라는 없느니만 못하다고까지 하면서 척화론을 고수하였다. 이때 이들이 우려한 것은 명의 ⓓ 문책이라기보다는 대명의리라는 보편적 규범의 포기에 따르는 도덕 윤리의 붕괴였다고 할 수 있다. 척화론은 실리의 문제를 초월한 의리의 차원에서 당시뿐 아니라 후대에도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반면 ㉡ 최명길 등의 주화론자들은 나라를 보전하기 위해 청의 강화 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최명길도 대명의리가 정론(正論)임을 인정하였고, 강화가 성립된 후에도 대명의리를 계속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그는 여러 논거를 들어 청과의 화친이 합당한 판단임을 주장했다. 우선 그는 척화론자들의 ‘나라의 존망을 헤아리지 않는 의리’를 비판하였다. 중국 후진의 고조는 제위에 오를 때, 이민족 거란이 세운 요나라의 힘을 빌리며 신하가 되기를 자처했다. 그런데 다음 황제 때에 신하 경연광이 요의 신하라고 칭하는 것을 그만두자는 강경론을 주도하였고, 결국 이로 인해 요가 침입해 후진은 멸망하였다. 이에 대해 유학자 호안국은 천하 인심이 오랑캐에게 굽힌 것을 불평하고 있었으니 한번 후련히 설욕하고자 한 심정은 이해할 만하지만 정치적 대처 면에서 나라를 망하게 한 죄는 ⓔ 속죄될 수 없다고 경연광을 비판했다. 최명길은 이 호안국의 주장을 인용하며 신하가 나라를 망하게 하면 그 일이 바르다 해도 죄를 피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최명길은 조선이 명으로부터 중국 내의 토지를 받은 직접적인 신하가 아니라 해외에서 조공을 바치는 신하일 뿐이기 때문에 명을 위해 멸망까지 당할 의리는 없으며 조선의 임금은 백성과 사직을 보전할 책임도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춘추』에 따르면 신하는 먼저 자기 자신의 임금을 위해야 하므로, 조선의 신하가 명을 위하여 조선을 망하게 하면 안 되는 것이 마땅한 의리라고 하였다.

 

@ 2022학년도 4월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 4~9번 (나)

(출전) 허태구, 「병자호란과 예, 그리고 중화」

 

○ 함께 출제된 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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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와 상도(2022, 고3, 4월)

도덕적 규범을 구체적인 현실에 적용하여 실천할 때, 보편성과 특수성 사이에서 선택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유학에서는 이런 문제를 ‘상도(常道)’와 ‘권도(權道)’로 설명하고 있다. 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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