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이며 역사가이다. 서양 철학과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에 관련된 인물 중 손꼽히는 인물이다. from 위키백과

(가)

철학에서는 상상력을 무엇으로 여기며, 그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상상력을 철학에서 핵심적인 주제로 생각한 흄은 상상력을 신체적이며 선천적인 기능으로 바라본 기존의 관점과 달리 정신적이며 후천적인 기능으로 규정한 최초의 철학자로 평가된다. 흄은 인간의 정신적 활동인 ‘지각’을 ‘인상’과 ‘관념’으로 구분한다. 인상은 감각과 같이 대상에 대한 경험의 직접적인 재료이고, 관념은 인상을 마음속에 떠올리며 생겨나는 이미지이다. 여기서 흄은 인상을 통해 이미지를 재생시키는 능력을 ‘상상력’이라 보았다. 상상력은 관념을 토대로 대상을 이해하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가장 기초적인 능력인 것이다.

흄은 인상을 관념의 형태로 재생시키는 능력으로 상상력과 함께 ‘기억’을 제시한다. 기억과 상상력의 차이는 인상과 관념의 차이와 마찬가지로 생생함의 정도에서 비롯되는데, 기억이 상상력보다 인상을 더욱 생생하게 재생한다. 그래서 기억에 의해 재생된 관념은 상상력에 의해 재생된 관념보다 훨씬 생생하고, 강렬하다. 또한 기억이 최초 인상들을 받아들일 때와 동일한 순서로 재생이 이루어지는 것과 달리 상상력은 순서와 상관 없이 자유롭게 재생이 이루어진다. 기억에 의해 재생된 관념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받아들인 특정한 인상에 대한 관념이지만, 상상력에 의해 재생된 관념은 각각의 인상들이 생긴 시간의 순서나 각 인상들의 공간적 배열까지도 원래 받아들일 때의 그것과는 다르게 재생된 관념인 것이다. 즉, 상상력은 기억과 달리 관념들을 결합하거나 분리할 수 있다. 상상력이 인상을 만들어 낼 수는 없지만, 인상들로부터 만들어진 관념들을 자율적으로 재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흄은 이러한 상상력의 자율성에 일정한 제약이 따른다고 본다. ‘관념 연합의 원리’, 즉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에서 습득된 유사성, 인접성, 인과성을 제시하면서, 상상력은 이러한 연합의 원리에 의해 관념들을 결합시키는 것이라 설명한다. 상상력이 관념들을 결합시킬 때 임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관념들끼리, 시공간적으로 인접해 있거나 인과 관계에 있는 관념들끼리 결합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흄에게 임의로 결합된 관념은 무의미한 환상에 불과하다.

또한 흄은 상상력이 가지고 있는 항상성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대상에 대한 인상들 간의 단절을 넘어 동일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의 대상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동일성을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러한 동일성이 상상력에 의하여 확보된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는 하늘이 밤사이에 소멸했다가 새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항상성에 의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고 독일 관념철학의 기반을 확립한 프로이센의 철학자이다. from 위키백과

(나)

칸트는 흄과 달리 상상력을 선험적인 차원에서 탐구하였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의 인식 능력은 감성, 상상력, 지성, 이성이라는 4가지로 구분된다. ‘감성’은 대상에 의해 우리에게 감각적으로 주어진 것을 오감(五感)을 통해 받아들이는 능력이다. ‘지성’은 개념을 형성하고, 그 개념에 근거하여 주어진 상황에 대해 판단을 ⓐ 내리는 능력을 말한다. ‘상상력’은 서로 이질적인 능력인 감성과 지성을 연결하는 능력으로, 감성의 내용을 지성에, 지성의 내용을 감성에 전달한다. 상상력이 감성의 내용을 지성으로 전달할 때 결합이 이루어지는 반면, 상상력에 의해 지성의 내용이 감성으로 전달될 때 도식화가 일어난다. ‘이성’은 추론하는 능력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감성, 상상력, 지성에 의해 축적된 수많은 지식들을 영혼이나 우주 또는 신이라는 이념으로 수렴하여 체계화한다. 이처럼 칸트는 인간의 인식 능력을 감성, 상상력, 지성, 이성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기능들이 어떻게 작동하고 이어지는지 그 원리를 분석하면서 감성과 지성의 매개자인 상상력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상상력이 없다면 인식이 성립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칸트는 상상력을 결합과 도식화의 측면에서 ㉠ ‘재생적 상상력’과 ㉡ ‘생산적 상상력’으로 구분한다. 재생적 상상력은 오감을 통해 느껴지는 다양한 감각들을 재생하여 결합하는 능력으로, 먼저 무질서하고 다양한 감각들을 훑어본 다음 훑어본 것을 재생하여 결합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이를 ‘종합’이라고 도 하는데, 서로 다른 시간들에서 경험한 것을 하나의 통일된 것으로 결합하게 한다. 가령 내가 사과를 보았을 때 오감으로 느껴지는 다양한 감각들을 훑어보고 모아서 그 사과를 하나의 상(像)으로 결합해 내는 경우는 재생적 상상력에 의해서 종합이 일어난 것이다.

생산적 상상력은 도식(Schema)을 능동적으로 만드는 능력이다. 도식은 감각에 영향을 받지 않으며, 경험 이전에 있으면서 그 경험을 인식하게 하는 선험적 형식을 말한다. 이러한 도식은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감각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나아가 생산적 상상력은 도식을 창조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응용할 수도 있게 된다. 이처럼 칸트는 흄이 경험적인 차원에서 연구하였던 상상력을 선험적인 차원에서 탐구함으로써 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 2022학년도 7월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 4~9번
(출전)
(가) 홍병선, <상상력의 철학적 근거>
(나) 김상환, <왜 칸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