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Unsplash 의 Andrey Metelev

 

 

인간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하나의 개체로 존재하다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채 ㉠소멸되어 버리는 운명에 처해 있다. 인간이 처해 있는 이 실존적인 불안은 세상의 모든 개체들이 다른 모든 개체들과 수평적 모순 관계 속에, 그리고 개체의 존재와 소멸을 주관하는 미지의 절대적 존재와 수직적 모순 관계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수평적 모순’은 개체들 간의 다름에서 비롯되는 갈등을 뜻하며, ‘수직적 모순’은 절대적 존재가 개체에게 늘 알 수 없음으로 남아 있어 비롯되는 갈등을 뜻한다. 이 실존적 불안에 인간은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


폴리스가 형성되기 전의 고대 그리스에서 절대적 존재는 각 개체에게 미지(未知)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폴리스가 형성된 후의 서양 철학에서는 이 절대적 존재에 대해 규명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이성의 힘을 통해 절대적 존재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밝혀 수직적 모순과 수평적 모순을 동시에 해결하고자 한 것이 다. 서양 철학에서는 절대적 존재의 본질에 해당하는 보편적 원리를 밝히면 이를 통해 개체들의 다름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동일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모든 개체들이 모순이 없는 체계 속의 정당한 구성 요소들로 규정됨으로써 개체의 정체성 또한 확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보편적 원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개체들의 이해는 서로 다를 수 있다. 따라서 서양 철학에서는 절대적 존재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놓고 논리적 정당화의 과정을 통해 다투는 방식인 ‘쟁론’이 중요해졌다.


중국 상고 시대의 경우에도 인간의 삶을 주관하는 절대적 존재는 미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춘추 시대 이후 공자의 사상을 ㉡계승한 학자들의 관심은 절대적 존재와의 수직적 관계로부터 인간과 다른 인간들과의 수평적 관계인 인아(人我) 관계로 ㉢이동해 갔다. 그들은 절대적 존재와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을 불필요하다고 판단해 외면하였고 다툼을 일으키는 수평적 개체들끼리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에 집중했다. 그들은 집단에서 공유할 수 있는 인(仁) 또는 예(禮)와 같은 구체적인 도덕적 가치를 마련함으로써 각 개체 간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개체보다 집단의 질서를 우선시하 여 그 집단의 가치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한 집단에서 조화를 이루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도덕적 가치에 따르며 자신을 드러내기를 삼가는 방식인 ‘상보’가 중요해졌다.


이 두 방식은 실존적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과 해결의 과정이 모두 다르지만 인간이 그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유사하다. 그러나 전자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절대적 존재가 무엇인지에 대해 개체가 끝없이 답을 내려도 그것이 절대적 존재에 대한 개체 나름의 해석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후자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절대적 존재와의 관계를 외면하고 집단 내에서 개체 간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에만 집중한다는 점에서 부분적인 해결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가진다. 이 두 방식은 도시 문명이 본격화되며 성곽 안의 공간에서 완벽한 지배 질서를 모색하기 시작한 시기에 고안된 인간 중심적인 방식이다.


반면 이들과 다른 또 하나의 방식이 있다. 가장 원시적인 이 방식은 개체에게 다가오는 수직적, 수평적 모순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하며, 절대적 존재를 알 수 없음의 상태 그대로 둔다. 개체의 능력으로 절대적 존재의 본질을 규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시도 자체가 무용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개체 간의 모순 또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각 개체는 모두 절대적 존재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으므로 개체들은 절대적 존재로부터 카리스마를 부여받은 대상에 자신을 맡기고 이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살아간다. 여기서 ‘카리스마’는 절대적 존재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능력을 뜻한다. 개체들은 자신이 발 딛고 살아가는 환경에 맞춰, 카리스마를 부여받아 절대적 존재를 대리하는 대상에 임시적으로 기생(寄生)하며 그 대상의 변화에 따라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이 방식은 실존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절대적 존재를 규명하지도 외면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실존적 불안은 해소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카리스마를 부여받은 대상에 제각각 기생하는 것을 곧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 살아간다.


앞의 두 방식과 비교할 때 이 방식의 특징은 모순을 해결할 수 없는 것으로 본다는 점과 개체의 정체성을 임시적인 것으로 그래서 언제든 양보될 수 있는 것으로 본다는 점이다. 쟁론이나 상보를 중시하는 방식이 최근 2, 3천 년 이래에 문명이 발달하면서 생겨난 인간 중심의 도시의 논리라고 한다면 이 방식은 인간이 지금껏 거쳐 온 몇 십만 년의 시간과 삶 속에서 모든 생명체들과 함께 존재 양식으로 온몸에 각인해 온 야생의 논리라 할 수 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인간이 가진 ㉤월등한 지각이라는 것도 사실은 실존적 불안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다른 동물의 특화된 생존 능력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 2021학년도 7월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 29~34번.

(출전) 박동환, <안티호모에렉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