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정산 내편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역법은 연월일시의 시간 규범을 제시하는 일뿐만 아니라 태양, 달 그리고 다섯 행성의 위치 변 화를 통해 하늘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역법의 운용과 역서의 발행은 나라를 다스리는 중요한 통치 행위였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는 국가 기구를 설치하여 역법을 다루었고 그곳의 관리에게만 연구가 허락되었다. 『서경(書經)』에서 말한 ‘하늘을 관찰하여 백성에게 시간을 내려준다.’라는 뜻의 관상수시(觀象授時)는 유교 문화권에서 역법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를 잘 드러낸다. 관상수시는 하늘의 명을 받은 천자에게만 허락된 일이므로 고려 시대에는 중국의 역을 거의 그대로 따라야 했다. 고려 초에 도입된 선명력은 정확성이 부족하여 고려 말에는 정확성이 높아진 수시력을 도입했다. 수시력은 계산 식이 복잡해 익히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일식과 월식, 곧 교식을 추보*할 때는 여전히 선명력이 사용되었다. 이 상황은 조선 건국 직후에도 지속되었다.


세종은 즉위 초부터 수시력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고 애썼고 마침내 수시력에 통달했다고 자부했다. 그럼에도 세종 12년, 교식 추보에 오차가 생기자 세종은 그 해결책으로 조선 만의 교식 추보 방법을 찾고자 했다. 세종은 중국의 역법을 수용하되 이것을 조선에 맞게 운용하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면서도 시간 규범을 스스로 수립하고자 한 것이다. 수시력으로 교식을 추보할 때에는 입성을 사용했는데, 이때의 입성은 모두 중국을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입성이란 천체의 위치를 계산하는 데 필요한 관측값 등을 실어 놓은 계산표이다. 세종은 한양을 기준으로 한 입성을 제작하려 했다. 그래서 입성 제작에 필요한 낮과 밤의 길이인 주야각을 추보하기 위해 한양의 위도 등을 알아내도록 명했다. 이러한 일련의 연구 성과를 담은 것이 세종 26년에 편찬된 『칠정산 내편』이다. ‘칠정’이란 태양, 달, 다섯 행성의 운행을 가리키고, ‘산’이란 계산했다는 뜻이다. 『칠정산 내편』은 중국 역법에 기반을 두었지만 교식과 천체 관측에 필요한 값들을 한양의 기준으로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역법이라 할 수 있다.


『칠정산 내편』의 효용성을 살피기 위해 세종은 정묘년 (1447년) 8월에 일어날 교식을 미리 추보하여 『칠정산 내편 정묘년 교식 가령』을 편찬하게 했다. 그런데 이 추보에 오차가 발생하자 추보의 방법과 내용을 꾸준히 정비했다. 이 성과를 담은 책이 바로 세조 4년에 편찬된 『교식 추보법 가령』이다. 이 책은 정묘년(1447년) 8월의 교식을 새로운 계산식으로 다시 추보한 것이다. 두 가령의 교식 추보 원리는 동일하지만 계산식을 약간 달리했기 때문에 교식 추보 시각은 서로 달랐다. 두 가령의 교식 추보 시각은 현대 천문학의 계산과 조금의 오차는 있지만 당시 유럽의 천문학과 비교하더라도 그 방법론이 매우 정교하여 조선 역법의 뛰어난 수준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지구는 태양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근일점에서 공전 속도가 가장 빠르다. 그러므로 북반구에서 관측한 태양은 동지 즈음에 가장 빠르게 운행하는 것으로 보이고, 하지 즈음에 가 장 느리게 운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칠정산 내편』은 근일점과 동지가 일치한다고 보았다. 즉 동지와 하지에서 태양의 실제 위치가 평균 속도로 운행한 태양의 위치와 일치한다고 설정한 것이다. 그리고 동지부터 하지 사이를 영, 하지부터 동지 사이를 축이라 했다. ‘영축차’는 태양의 실제 위치에서 평균 위치를 뺀 값이다. 그러므로 영에서의 값인 ‘영차’는 양의 값이고, 축에서의 값인 ‘축차’는 음의 값이다. 달 역시 지구와 가까울수록 빠르게 움직인다. 그래서 달이 지구와 가장 가까이 위치할 때인 근지점에서 ‘지질차’의 값을 0으로 간주했다. ‘지질차’란 달의 실제 위치에서 평균 위치를 뺀 값인데, 근지점부터 달이 지구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원지점까지는 달의 실제 위치가 평균 위치보다 앞선다. 그리고 원지점부터 근지점까지는 그 반대이다. 달의 실제 위치가 평균 위치보다 앞서면 ‘질차’, 뒤처지면 ‘지차’라 했다.


달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놓여 태양을 가릴 때를 삭(朔), 지구가 태양과 달 사이에 놓여 달을 가릴 때를 망(望)이라 한다. 정삭과 정망은 지구와 달이 태양과 정확히 일직선 위에 놓이게 될 때의 시각이다. 『칠정산 내편 정묘년 교식 가령』과 『교식 추보법 가령』 모두 정삭, 정망은 태양과 달의 평균 위치로 계산된 경삭과 경망에 실제 태양과 달의 빠르고 느린 정도를 가하거나 감하여 구했다. 이를 가감차 방식이라 한다. 가감차 값은 영축차에서 지질차를 뺀 값을 속도항 값으로 나누어 구했다. 즉 가감차 값이 양일 때에는 그 값을 경삭, 경망에 더하는 가차로 삼았고, 음일 때에는 그 값을 경삭, 경망에서 빼는 감차로 삼았다. 앞에서 언급한 두 가령 모두 영축차에서 지질차를 뺀 값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칠정산 내편 정묘년 교식 가령』은 속도항 값으로 달의 이동 속도를 활용했지만, 『교식 추보법 가령』은 달의 이동 속도에서 태양의 이동 속도를 뺀 값을 활용했다. 이는 태양이 달에 비해 느린 속도로 달과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을 고려한 것이다.


『칠정산 내편』 등을 통한 역법의 확립으로 조선은 유교적 이념을 만족스럽게 실현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칠정산 내편』이 편찬된 지 200여 년 뒤, 일본을 왕래하던 조선 통신사 사신 박안기는 조선의 역법을 일본에 전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일본에서도 독자적인 역법 『정향력』이 완성되었다. 동아시아 천문학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서로 다르게 전개되었지만 『칠정산 내편』, 『정향력』 등은 자국의 고유한 역법을 확립하고자 했던 열망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 추보 : 천체의 운행을 관측함.



― 한영호 외, ‘세종의 역법 제정과 『칠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