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현대인들에게 무엇인가가 ‘있다/없다’라는 존재 ㉠여부에 대한 판단과 무엇인가가 ‘좋다/나쁘다’라는 존재에 대한 가치 판단은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특히 현대인들에게 ‘있다/없다’는 양자택일의 문제이다. 그러나 플라톤은 이와는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플라톤의 관점에는 무엇이 ‘있다/없다’라는 존재론적 판단과 무엇이 ‘좋다/나쁘다’라는 가치론적 판단이 하나로 일치되어 있다. 즉 플라톤에게 존재론적으로 ‘있다/없다’는 가치 판단의 문제인 것이다. 


존재와 그 존재의 가치가 일치한다면, 특정한 존재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플라톤은 그것을 ‘있음’의 ‘정도’로 보았다. 이때 ‘있다’에는 ‘존재한다’라는 측면에서 실재성의 정도와 ‘가치 있다’라는 측면에서 완전성의 정도를 모두 포함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대상이 다른 대상보다 ‘더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이 상대적으로 더 완전한 대상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덜 존재한다’라는 것은 그 대상이 덜 완전한 대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플라톤은 가장 실재하는 것, 가장 완전한 것을 ‘’라고 ㉢규정하는데 이는 현실 세계를 초월한 차원에 존재한다. 반대로 세계에 존재하는 만물인 ‘현상’은, 이데아에 비해 덜 존재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플라톤은 현상을 만드는 창조자로 ‘데미우르고스’를 설정하고, 그 창조자가 외부의 이데아를 본으로 삼아 현상을 만든 것으로 보았는데, 플라톤은 이 과정을 ‘모방’이라고 한다. 모방을 통해 현상은 이데아의 본질을 나누어 갖게 된다. 그런데 현상은, 영원불변한 존재인 이데아의 본질을 모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다. 이데아와 현상의 관계에 대해 플라톤은 ‘관여(關與)’ 또는 ‘임재(臨在)’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설명했다. 이때 ‘관여’와 ‘임재’는 사실상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는 개념으로서, 현상이 이데아의 본질과 유사한 정도를 ‘관여’의 정도라고 하고, 현상이 이데아의 본질을 가지고 있는 정도를 ‘임재’의 정도라고 한다. 플라톤에게 중요한 것은 개개의 현상들이 이데아에 얼마나 ‘관여’하는가 또는 이데아가 개개의 현상들에 얼마나 ‘임재’하는가의 문제이다. 즉 ‘관여’ 혹은 ‘임재’의 정도가 그 사물의 존재론적이자 동시에 가치론적 ㉣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관여’나 ‘임재’의 정도가 높다는 것은 그 현상이 이데아의 본질에 더 가깝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완전성의 정도가 높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말’의 이데아가 지닌 본질 중의 하나가 빠르게 달리는 능력이라면 경주에서 빨리 달리는 말일수록 그렇지 못한 말들보다 이데아에 대한 ‘관여’나 ‘임재’의 정도가 높은 것이다. 이처럼 현상들에는 관여나 임재가 다양한 정도로 나타난다. 


존재론적 판단과 가치론적 판단을 하나로 여기는 플라톤의 ㉤사유 방식은 당시 그리스 사람들의 보편적인 사유 방식을 반영하고 있었고, 더 나아가 서구의 고대와 중세의 사유 방식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 (출전) 이정우, 「사건의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