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



사회 이론은 사회 구조나 사회적 상호 작용을 연구하는 이론들을 통칭한다. 사회 이론은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면서도 연구 대상뿐 아니라 이론 자체가 사회 상황이나 역사적 조건에 긴밀히 연관된다는 특징을 지닌다. 19세기의 시민 사회론을 이야기할 때 그 시대를 함께 살펴보게 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시민 사회라는 용어는 17세기에 등장했지만, 19세기 초에 이를 국가와 구분하여 개념적으로 정교화한 인물이 헤겔이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 유럽의 후진국인 프러시아에는 절대주의 시대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었다. 산업 자본주의도 미성숙 했던 때여서, 산업화를 추진하고 자본가들을 육성하며 심각한 빈부 격차나 계급 갈등 등의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가 있었다. 그는 사익의 극대화가 국부(國富)를 증대해 준다는 점에서 공리주의를 긍정했으나, 그것이 시민 사회 내에서 개인들의 무한한 사익 추구가 일으키는 빈부 격차나 계급 갈등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그는 시민 사회가 개인들이 사적 욕구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생활 영역이자 그 욕구를 사회적 의존 관계 속에서 추구하게 하는 공동체적 윤리성의 영역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시민 사회 내에서 사익 조정과 공익 실현에 기여하는 ㉠ 직업 단체와 복지 및 치안 문제를 해결하는 복지 행정 조직의 역할을 설정하면서, 이 두 기구가 시민 사회를 이상적인 국가로 이끌 연결고리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빈곤과 계급 갈등은 시민 사회 내에서 근원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국가를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공적 질서를 확립할 최종 주체로 설정하면서 시민 사회가 국가에 협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편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는 혁명을 이끌었던 계몽주의자들의 기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사회는 사익을 추구하는 파편화된 개인들의 각축장이 되어 있었고 빈부 격차와 계급 갈등은 격화된 상태였다.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자 단체와 고용주 단체 모두를 불법으로 규정한 르 샤플리에 법이 1791년부터 약 90년간 시행되었으나, 이 법은 분출되는 사익의 추구를 억제하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프랑스 시민 사회를 극도로 위축시켰다. 뒤르켐은 이러한 상황을 아노미, 곧 무규범 상태로 파악하고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표방하는 공리주의가 사실은 개인의 이기심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아노미를 조장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익을 조정하고 공익과 공동체적 연대를 실현할 도덕적 개인주의의 규범에 주목하면서, 이를 수행할 주체로서 ㉡ 직업 단체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 헤겔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뒤르켐은 직업 단체가 정치적 중간 집단으로서 구성원의 이해관계를 국가에 전달하는 한편 국가를 견제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헤겔과 뒤르켐은 시민 사회를 배경으로 직업 단체의 역할과 기능을 연구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직업 단체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이러한 차이는 두 학자의 시민 사회론이 철저하게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이들의 이론은 과학적 연구로서 객관적으로 타당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이론이 갖는 객관적 속성은 그 이론이 마주 선 현실의 문제 상황이나 이론가의 주관적인 문제의식으로부터 근본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에밀 뒤르켐(1858~1917)








21. 윗글의 내용 전개 방식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논지를 제시한 후, 대표적인 사례를 검토하는 과정을 통해 주제를 명료화하고 있다.[각주:1]

② 화제를 소개한 후, 예외적인 사례를 배제하는 과정을 통해 주제를 일반화하고 있다.

③ 주장을 제시한 후, 예상되는 반증 사례를 검토하는 과정을 통해 주제를 강화하고 있다.

④ 쟁점을 도출한 후, 각 주장의 근거 사례를 비교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주제를 정당화하고 있다.

⑤ 주제를 제시한 후, 동일한 사례를 다른 관점에서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 주제를 초점화하고 있다.



22. 윗글을 통해 알 수 있는 내용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은?

① 19세기 초 프러시아에는 절대주의의 잔재와 미성숙한 산업 자본주의가 혼재하였다.

② 프랑스 혁명 후 수십 년간 프랑스는 개인들의 사익 추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각주:2]

③ 헤겔은 국가를 빈곤 문제나 계급 갈등과 같은 사회 문제를 해결할 최종 주체라고 생각하였다.

④ 뒤르켐은 혁명 이후의 프랑스 사회를 이기적 욕망이 조정되지 않은 아노미 상태로 보았다.

⑤ 헤겔과 뒤르켐은 공리주의가 시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으로 보았다.



23. ㉠과 ㉡의 공통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사익을 조정하고 공익 실현을 추구한다.[각주:3]

② 국가를 견제하는 정치적 기능을 수행한다.

③ 치안 및 복지 문제 해결의 기능을 담당한다.

④ 공리주의를 억제하고 도덕적 개인주의를 수용한다. 

⑤ 시민 사회 외부에서 국가와의 연결 고리로 작용한다.



24. 윗글의 글쓴이의 관점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①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과학적 연구를 수행할 수 없다.

② 객관적 사회 이론은 이론가의 주관적 문제의식과 무관하다. 

③ 시・공간을 넘어 보편타당하게 적용할 수 있는 객관적 사회 이론이 성립할 수 있다.

④ 과학적 연구 방법에 의거한 사회 이론은 사회 현실의 문제 상황과 무관하게 성립할 수 있다.

⑤ 사회 이론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 이론이 만들어진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도움이 된다.[각주:4]




  1. 이 글의 논지는 사회 이론이 당시의 사회 상황이나 역사적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대표적인 사례로 헤겔과 뒤르켐의 이론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4문단에 따르면 헤겔과 뒤르켐 모두 시민 사회와 직업 단체에 대해 이론을 펼쳤지만 두 사람의 이론은 상이한 성격을 갖는데, 이는 이들이 처한 사회적 역사적 배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본문으로]
  2. 3문단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는 사익을 추구하는 파편화된 개인들의 각축장이 되어 있었다. 따라서 개인들의 사익 추구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다. [본문으로]
  3. 2문단에서 헤겔은 직업 단체가 사익 조정과 공익 실현에 기여한다고 하였고, 3문단에서 뒤르켐 역시 직업 단체가 사익을 조정하고 공익을 실현할 주체로 보았다고 하였다. [본문으로]
  4. 1문단과 4문단에 따르면 사회 이론은 당시 시대적 배경과 긴밀히 연관된다. 따라서 사회 이론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 이론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