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과학이 도전하고 있는 난제 중 하나이다. 영국의 과학 주간지 <뉴사이언티스트>는 지난 특집에서 ‘생명의 10대 수수께끼’를 다루었다. 이 중 상당수는 해묵은 것들이지만 몇 가지는 오늘날 우리가 생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상(像)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상을 떠받치는 가정들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준다.

 

먼저 ‘우리는 지금도 진화하는가’라는 물음에 많은 사람들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어딘지 낯선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진화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진화를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선 듯한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역시 진화의 흐름에서 열외일 수 없다. 다윈은 진화의 두 가지 메커니즘으로 유전 가능한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꼽았다. 그 중에서 변이는 모든 생물들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선택의 측면에서는 분명 과거와 다른 요인들이 많이 개입한다. 가령 과거에는 적자(適者)가 많은 자손을 남겨서 자신의 유전형을 확산했지만, 오늘날에는 생식기술의 발전과 인위선택이라 불릴 수 있는 숱한 요소들이 그동안 자연선택이라 불리던 것을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 요소들이 또한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다음으로 ‘유성생식이 왜 필요한가’라는 물음은 복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꼭 되새겨 보아야 한다. 지구상에 생존하는 다세포 생물 중 99.9%가 유성생식을 한다. 이들은 자신의 후손을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유성생식의 과정은 효율성 면에서 보면 무척이나 거추장스럽고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렇기에 오늘날 간편하고 효율적인 복제로 우량 품종을 대량 생산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인간도 미래에는 이런 방법으로 생식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터무니없는 기대가 팽배하고 있다. 하지만 35억 년에 걸친 진화 과정에서 다세포 생물들이 압도적으로 유성생식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많은 학자들은 오늘날 풍부한 생물종이 탄생하고, 지능과 같은 인간적 특성들이 발생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유성생식을 지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과 같은 지능의 출현은 필연적이었는가’라는 물음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의 출현이 진화의 궁극적인 목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즉, 단세포 생물에서 영장류를 거쳐 인간에 도달한 경로를 유일한 생명의 역사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생명이라는 테이프를 되감아 다시 돌리면 인간이 등장할 가능성이 있을까”라는 유명한 물음을 ⓔ제기한다. ㉡아쉽게도 그 답은 ‘아니다’이다. 인간은 생명의 역사라는 기나긴 여정에서 목적지가 아니라 한 간이역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수천만 년 전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도 순식간에 멸종했고, 그 빈틈을 비집고 우리의 아득한 선조가 번성할 수 있었듯이 우리도 어느 한순간 공룡의 신세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생명을 둘러싼 수수께끼들을 살펴보면서 이러한 질문들이 계속 변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가, 생명에 대한 우리의 접근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간명하게 말해서, ‘생명이란 무엇인가?’라고 묻기 위해서는 먼저 생명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생각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토대로 그 물음에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