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₂O. 산소 원자 하나에 수소 원자 두 개가 결합된 것. 물은 이처럼 간단한 화합물이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화합물이기도 하다. 


우선, 물은 비정상적이라고 할 만큼 끓는점이 높다. 일반적으로 같은 족에 속하는 원소들은 화학적으로 유사한 성질을 지니며, 그들의 끓는점은 원자량이 증가할수록 높아진다. 이는 산소족에 속하는 원소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즉, 산소, 황, 셀레늄, 텔루르 등의 순으로 끓는점이 높아진다. 이들은 동일한 방식으로 수소와 결합하여 물, 황화수소, 셀레늄화수소, 텔루르화수소 등의 수소화합물을 이루며, 이들 화합물의 끓는점은 대체로 구성 원소의 원자량이 증가할수록 높아진다. 그런데 유독 물의 경우에는 끓는점이 비정상적으로 높다. 황의 수소화합물인 황화수소(H₂S)의 끓는점이 -59.6℃인데 비해 산소족 원소들 중에서 원자량이 가장 적은 산소의 수소화합물인 물은 끓는점이 100℃나 되는 것이다. 단순히 원칙대로만 따지면, 물의 끓는점은 -80℃정도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물은 다른 물질들에 비해 1℃의 온도를 올리기 위해 필요한 열량, 즉 비열이 대단히 높다. 어떤 물질의 온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양의 열이 필요하다는 말은, 온도가 내려갈 때 그만큼 많은 열에너지를 방출한다는 의미도 된다. 


이렇게 물의 끓는점이 높고 비열이 큰 이유는 물분자들 사이의 강한 결합력 때문이다. 물의 단독 분자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물분자들은 강한 결합력을 바탕으로 집단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온도를 높이는 데 많은 열이 필요하며 쉽게 기화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물은 가장 뛰어난 용매이기도 하다. 물질들을 물속에 넣으면 그 물질의 원자나 분자 사이에 작용하던 힘이 매우 약해져서 쉽게 녹아 버린다. 물이 이렇게 뛰어난 용해력을 갖는 것은 물분자가 자기들끼리 결합하는 힘뿐만 아니라 다른 물질의 원자나 분자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힘도 역시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물이 지닌 이러한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물분자가 ‘극성 공유 결합’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적인 공유 결합으로 이루어진 분자의 두 핵은 그 사이에 있는 전자들을 동등하게 공유하지만, 극성 공유 결합을 한 분자의 경우에는 전자들이 한쪽의 핵에 더 강하게 끌리게 된다. 이 때문에 분자의 한쪽 끝은 약간의 양전하를 띠게 되고 다른 쪽 끝은 약간의 음전하를 띠게 된다. 양전하를 띠는 부분과 음전하를 띠는 부분이 쉽게 결합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러한 결합 방식 덕분에, 물분자들끼리의 결합력이 다른 물질의 분자들에 비해 강할 뿐만 아니라, 다른 물질들과도 쉽게 극성 공유 결합을 이룸으로써 그 물질을 용해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물의 이러한 성질은 생명 현상에 매우 유익한 결과들을 초래한다. 물분자들의 결합력 덕분에 물은 상온에서 기체 상태가 아니라 액체와 고체 상태로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더불어 물을 생명 유지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우리 생물체들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물은 비열이 높기 때문에 온도에 민감하지 않다. 즉 항상성이 크다. 그 덕분에 대부분이 물로 채워진 생물체와 지구는 급격한 변화를 겪지 않고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다. 생물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신진대사 역시 물의 강한 용해력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 레프 블라소프 외, <변화무쌍한 물의 성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