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ain Badiou (1937- )

 

현대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정치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지도자를 뽑아 정부를 잘 운영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사회 구조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회 구조의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이에 대해 바디우는 ㉠ ‘사건’을 계기로 ㉡ ‘진리’가 만들어지면서 사회 구조가 변화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바디우에 따르면, 사건이란 기존의 사회 구조를 뒤흔들 만큼 충격적인 일이면서 미리 계획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사건은 의도적으로 발생시킬 수 없는 것으로,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일으키지만 사회 전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내의 특정한 지점에서 발생한다. 바디우는 사건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지만 사회 구조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사건의 대표적 예로 1871년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났던 파리코뮌을 들고 있다.

 

바디우는 기존의 사회 구조를 벗어나는 독특한 사건이 발생하면 사회 구성원들은 이 사건을 전에 없던 ‘이름’으로 부르고 이 이름은 사건이 사라진 후에도 사회에 흔적으로 남는다고 본다. 사건이 사라지고 난 후, 개인이나 집단은 사건의 이름을 통해 사건을 떠올리며 사회 안의 각 요소들과 사건의 관련성을 살펴보는 시도를 한다. 즉 개인이나 집단이 사회 안의 제도, 행위, 발언 등을 검토하여 그것이 사건을 이어 갈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가려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회 안의 요소들 중에서 사건에 충실한 요소와 그렇지 않은 요소를 가려 내는 이러한 작업을 바디우는 ‘탐색’이라고 부르고, 탐색의 판단 기준을 ‘충실성’이라고 부른다. 이때 탐색에 참여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사회 안의 특정한 요소를 선택해 그것의 충실성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요소들이 사건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를 조사한다.

 

바디우는 탐색을 통해 사건에 충실한 것으로 분류된 요소들 이 진리를 ⓐ 이룬다고 말한다. 즉 바디우에게 있어 진리란 거짓에 반대되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계기로 이루어진 탐색의 결과이자 사회 안에서 사건에 충실한 요소들의 집합체이다. 바디우는 이러한 진리는 정치 이외에도 과학, 예술, 사랑의 영역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바디우는 진리가 만들어지는 과정, 즉 진리 절차에서 진리를 이루는 부분들을 ‘주체’라고 부른다. 진리를 만들어 가는 개인이나 집단의 행위, 발언 중에서 충실한 요소들이 모여 주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진리 절차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 자신이 곧 주체는 아니며, 그 사람의 행위나 발언 중 사건에 충실한 것만이 주체의 일부가 된다. 이러한 바디우의 시각이 개인을 보잘것없게 만든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 이에 대한 반대급부가 있다. 어떤 사람이 정치적 활동을 하면서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면 이 활동은 정치적 주체의 일부이면서 예술적 주체의 일부가 될 수 있으므로 개인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바디우는 자신의 철학을 펼치면서 사건은 진리가 만들어지는 데 필수적이지만 그 자체가 진리는 아니라고 강조하며, 사회 구조의 변화를 위해 중요한 것은 우연한 사건보다 시간의 경과 속에서 만들어지는 진리라고 말한다. 이는 바디우가 말하는 ‘용기’의 중요성과도 연결된다. 바디우에게 있어 용기란 진리를 좇는 용기, 즉 사회 안의 요소들을 진리에 속하는 것과 아닌 것으로 나누는 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할 수 있는 용기이다. 결국 바디우는 사회 구조의 변화를 위해서는 앞으로의 일이 아니라 이미 일어났던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그 사건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 (출처) 장태순, ‘알랭 바디우’
@ 2019학년도 10월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 41~45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