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L빔들>은 로버트 모리스의 미니멀리즘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회색 빛깔의 두꺼운 나무로 된 산업재료 L빔들을 그대로 가져다가 배치하여 작품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제2차 대전 이후 전쟁으로 인한 불안, 인간 소외 등 예술적 정서나 의미를 과도하게 표현하려는 예술적 경향이 나타났다. 이에 비해 미니멀리즘(minimalism)은 간결하고 절제된 표현 기법으로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려는 예술적 경향을 지닌다.


이 사조는 예술 표현이 단순할수록 오히려 현실 세계를 더 쉽게 표현할 수 있다는 ‘단순성의 원리’와 인간의 지각은 총체적으로 이해된다는 ‘확장성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러한 예술 양상은 음악에서는 변함없는 강세 및 빠르기로, 건축에서는 단순한 색채 및 재료의 사용과 기하학적 구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단순성과 확장성의 원리는 특히 조형물에서 잘 나타난다. 미니멀리즘에 의한 조형물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매개의 최소화를 통한 ‘단순성의 원리’를 지향한다. 매개의 최소화는 작품의 재료, 소재, 형태 등 작품 표현에 사용되는 매개 요소를 변형하거나 가공하지 않고 원재료에 가깝게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원재료를 그대로 사용하는 구상, 일상의 사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오브제 트루베에 의한 구상,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에 의한 구상 등으로 표현된다. 작품에서 매개 요소가 최소화되면 감상자가 떠올릴 수 있는 대상은 오히려 더 많아지고, 감상자의 마음속에 잠재하고 있는 이미지를 보편적인 형상으로 떠올리기가 더 쉬워진다. 작품에 사용되는 매개가 적고 단순할수록 감상자는 그것을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고, 감상자의 인식 속의 보편적 형상과 일치시키기가 더 쉽다는 것이다.


둘째, 미니멀리즘에 의한 조형은 기하 추상에 의한 ‘확장성의 원리’를 추구한다. 미니멀리즘 조형물이 놓인 공간은 작품의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작품이 놓인 공간은 감상자로 하여금 작품을 그 작품이 놓인 공간의 관련성 속에서 감상하게 한다. 예를 들어 기하 추상에 의한 미니멀리즘 조형물을 감상할 때, 감상자는 그것을 인지함과 동시에 작품 주위의 배경으로까지 시선이 이동되어 감상이 확대된다. 미니멀리즘 조형물은 기존의 조형물이 설치된 방식과 달리 주로 바닥에 배치된다. 이로써 작품 자체가 놓인 공간과 감상자가 서 있는 장소는 관람만을 위한 전망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감상을 위한 총체적 공간이 되는 것이다. 즉 ‘확장성의 원리’는 조형물이 놓인 배경에까지 공간 체험을 확대하여 예술적 환경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임석재 , 「건축과 미술이 만나다 1945-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