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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의학계에서 최고의 관심을 갖고 있는 과제는 노화와 암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세포의 노화와 관련된 것으로서 DNA의 양끝 부분인 텔로미어를 지목했고, 텔로미어를 만드는 효소인 텔로머라아제의 기능을 응용하면 노화와 암에 대한 신약이나 새로운 치료 방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텔로미어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먼저 DNA의 구조와 복제 과정을 알아야 한다. DNA는 긴 사슬의 형태로 이어져 있는 핵산들의 가닥 2개가 나선 모양으로 결합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이 핵산들에는 각각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같은 염기가 하나씩 들어 있다. 한쪽 가닥의 아데닌이 있는 핵산은 다른 가닥의 티민이 있는 핵산과, 구아닌이 있는 핵산은 시토신이 있는 핵산과 상보적으로 결합하는데, 이들 염기의 배열 순서가 유전 정보다.


DNA가 복제될 때는 나선 구조의 한쪽 끝이 열리면서 두 가닥이 서로 벌어진다. DNA를 합성하는 효소들은 벌어진 두 가닥을 지나가면서 배열된 염기 순서에 맞춰 상보적인 염기를 가진 핵산으로 새로운 DNA 사슬을 짠다. 문제는 DNA 사슬을 복제할 때 끝부분의 핵산이 복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제 효소는 복제 대상인 핵산을 지나서 다음 핵산에 도달할 때 지나온 핵산을 복제한다. 따라서 끝에 있는 핵산은 다음 핵산이 없으므로 효소가 지나갈 수 없고, 따라서 복제가 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복제가 될 때마다 DNA 사슬 끝부분의 핵산이 사라지고, 사라지는 부분에 있는 유전 정보들은 손실된다.


DNA는 진화를 거치면서 양끝에 유전 정보가 들어 있지 않은 짧은 길이의 사슬을 붙이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는데, 이 짧은 사슬이 바로 텔로미어(telomere)다. 생물은 각 종마다 텔로미어의 염기서열과 길이가 서로 다르다. 사람 염색체에 있는 텔로미어는 염기서열 TAGGG가 반복되는 구조이다. 이러한 텔로미어가 유전 정보가 들어 있는 사슬 부분에 덧붙어 있으면 복제 효소가 통과할 수 있게 되어, 정보의 손실을 예방할 수 있다. 물론 텔로미어도 세포분열(DNA 복제)이 반복될수록 그 길이가 짧아진다. 텔로미어라 해도 마지막 핵산이 복제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세포분열의 횟수는 조직에 따라 정해져 있으며, 그 횟수는 텔로미어의 길이에 따라 결정된다. 텔로미어가 어느 정도의 길이(노화점) 이하로 짧아지면 노화 현상이 생기고 결국 세포가 죽는다.


하지만 모든 세포에서 텔로미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암세포의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해도 줄어들지 않는다. 즉 분열 횟수가 증가해도 노화 현상이 생기지 않고, 무제한으로 증식한다. 이런 현상은 텔로미어를 만드는 효소인 텔로머라아제가 활성화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텔로머라아제는 텔로미어를 합성한 뒤 DNA 끝에 붙여서 텔로미어 전체의 길이를 늘린다. 이 효소는 모든 세포에 있지만, 정상인의 경우 대부분의 일반 세포에서는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난자를 만드는 전구세포와 혈액세포를 만드는 조혈모세포 같은, 세포분열이 활발해야 하는 일부 세포에서만 활성화되어 있다.


과학자들은 텔로머라아제의 기능 조절 방법을 밝혀, 텔로미어를 짧아지게 하거나 짧아지지 않게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전자는 암 치료와, 후자는 노화 방지와 관련이 있다. 암세포 정복과 장수(長壽)의 꿈을 동시에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변태섭, 이정아, ‘동아사이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