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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본성을 다루는 학문인 인식론은 흔히 지식의 유형을 나누는 데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식의 유형은 ‘안다’는 말의 다양한 용례들이 보여 주는 의미 차이를 통해서 ⓐ드러나기도 한다. 예컨대 ‘그는 자전거를 탈 줄 안다’와 ‘그는 이 사과가 둥글다는 것을 안다’에서 ‘안다’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전자의 ‘안다’는 능력의 소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절차적 지식’이라고 부르고, 후자의 ‘안다’는 정보의 소유를 의미하는 것으로 ‘표상적 지식’이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이 자전거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해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며, 자전거를 탈 줄 알기 위해서 반드시 자전거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 정보 없이 그저 넘어지거나 다치거나 하는 과정을 거쳐 자전거를 탈 줄 알게 될 수도 있다. ‘자전거가 왼쪽으로 기울면 핸들을 왼쪽으로 틀어라’와 같은 정보를 이용해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 사람이라도 자전거를 익숙하게 타게 된 후에는 그러한 정보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서도 자전거를 잘 탈 수 있다. 자전거 타기 같은 절차적 지식을 갖기 위해서는 훈련을 통하여 몸과 마음을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화해야 한다. 그러나 특정한 정보를 마음에 떠올릴 필요는 없다.


반면, ‘이 사과는 둥글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둥근 사과의 이미지가 되었건 ‘이 사과는 둥글다’는 명제가 되었건 어떤 정보를 마음속에 떠올려야 한다. ‘마음속에 떠올린 정보’를 표상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이러한 지식을 표상적 지식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어떤 표상적 지식을 새로 얻게 됨으로써 이전에 할 수 없었던 어떤 것을 하게 될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표상적 지식은 절차적 지식과 달리 특정한 일을 수행하는 능력과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다. 


표상적 지식은 다시 여러 가지 기준에 ⓒ따라 나눌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경험적 지식’과 ‘선험적 지식’으로 나누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경험적 지식이란 감각 경험에서 얻은 증거에 의존하는 지식으로, ‘그는 이 사과가 둥글다는 것을 안다’가 그 예이다. 물리적 사물들의 특정한 상태, 즉 사과의 둥근 상태가 감각 경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입력되고, 인지 과정을 거쳐 하나의 표상적 지식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감각 경험을 통해 직접 만나는 개별적인 대상들로부터 귀납추리를 통해 일반 법칙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자연 세계의 일반 법칙에 대한 지식도 경험적 지식이다.


한편, 같은 표상적 지식이라 할지라도 ‘2+3=5’를 아는 것은 ‘이 사과가 둥글다’를 아는 것과는 다르다. ‘2+3=5’라는 명제는 감각 경험의 사례들에 의해서 반박될 수 없는 진리이다. 예컨대 물 2리터에 알코올 3리터를 합한 용액이 5리터가 안 되는 것을 발견했다고 해서 이 명제가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감각 경험의 증거에 의존하지 않는 지식이 선험적 지식이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들은 인간에게 경험 이외에 지식을 산출하는 ⓔ다른 인식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수학적 지식이 그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