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스텐, '향락의 폐해'


장르화는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익명의 인물들과 소소한 사건들을 묘사한 그림이다. 그런데 장르화는 대체 어떻게 해서 장르화로 불리게 된 것일까? 17세기에 들어와 서양에서는 회화의 주제를 구분하려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났다. 이때 역사화와 역사화 이외의 장르를 엄밀하게 구분하였는데, 역사화 이외의 장르에 해당하는 그림 전반을 가리켜 ⓐ장르화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 등을 더욱 확실하게 구별하는 관행이 정착됐고, 끝내 아무런 이름을 얻지 못한 나머지 그림들은 계속 ⓑ장르화로 남게 됐다. 


장르화는 일상생활과 풍속을 묘사한 그림으로, 당대의 역사, 문화, 생활, 미의식 등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강한 호소력을 지니며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풍속화와 유사하다. 또한 예리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소재를 포착하여 솔직하고 재치 있게 표현한 장르화는 해학과 풍자, 익살로 충만하다는 점에서도 우리 풍속화와 유사하다. 장르화에 나타나 있는 인물들의 어리석고 바보 같은 행동, 웃음을 자아내는 우스꽝스러운 모습, 비정상적인 인간 군상들의 삶의 모습에서 우리는 해학, 풍자, 익살을 느낄 수 있다.


어수룩해 보이기도 하고 소박해 보이기도 하는 장르화가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삶에 대한 진솔한 이해와 그것을 유머러스하게 드러내는 능력 때문이다. 특히 17세기 네덜란드 장르화는 거창하지 않아도 따뜻하고, 고상하지 않아도 진실하다. 그만큼 우리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준다. 물론 그 감동의 밑바닥에서 때로 삶의 하잘것없음과 비참함을 토로하는 광경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우리는 현실의 비극에 대해 새삼 깊이 사유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비극적으로만 그려지지는 않는다. 이런 현실을 인간적인 풍미와 웃음으로 감싸안는 해학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르화에서의 해학은 사실 일정한 도덕적 관념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장르화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소품에 유의하면 그 안에 담긴 도덕적인 교훈을 발견할 수 있다.


근대에 들어 부르주아 시민 사회가 성장하면서 장르화는 시민들의 근면한 생활이나 노동 윤리 등 합리적인 생활 태도를 강조하고 허례허식과 부도덕한 삶을 비판함으로써 자본주의적, 시민적 윤리의 확산을 도왔다.


장르화가 등장하기 전에는 종교나 신화, 역사 같은 것만을 가치 있다고 여겼다. 세속적인 일상생활이란 아무런 위대성과 숭고미를 머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그릴 만한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장르화를 그렸던 화가들은 가치 있는 것이 일상 저 너머가 아니라 일상 속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삶의 의미를 삶 그 자체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서양미술사에서 장르화가 주목을 받은 것이다.